마이 리뷰에 올린 홍어의 원본입니다. 마이 리뷰는 글자수 제한 때문에 부분 부분 잘라놓은 것이랍니다.
가슴 저미도록 아픈 기다림의 추억
‘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너 내 맘 알기나 해? 너도 나처럼 그렇게 나 보고 싶었어?’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밖은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빛을 밝히고 있는데도 하얀 눈이 쌓인 평온한 들판을 상상케하는 투명한 눈은 흐를 듯 말 듯한 눈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병든 환자의 그것처럼 바싹 마른 입술을 열었다. 울음이 가득 섞여 들릴 듯 말 듯 낮고 가녀리면서도 화산 속에서 마그마를 분출해내듯 터져나오는 목소리로 내게 처음 건 낸 말이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세영 어머니의 6년 세월만큼이나 그녀의 기다림도 그렇게 쉬운 날들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그런 기다림에 무척이나 지쳐보였다. 내가 돌아오는 날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달력 위에서 하루하루 X표를 해나가는 일이 하루의 마지막 일과가 되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첫사랑인 그녀에게 나와 헤어져 보낸 6개월이라는 시간은 그리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나의 떠남의 공간은 외부와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채 바다 한가운데에서 살아야 하는 선상 생활이었다. 다름 아닌 승선실습이었다. 가끔씩 벌어지는 수 일간 목소리는 커녕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조차도 알 수 없게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은 6개월이라는 시간을 더욱 길고 힘들게 만들었다. 시퍼런 칼날을 드리세우는 파도는 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가지 못하게 막고 서 있었다.
‘그랬구나. 그렇게 많이 보고 싶었어? 나도 너 많이 보고싶었는데.’ ‘학교 오갈 때, 지하철 안에서 서로 팔짱끼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발렌타인데이다, 화이트데이다 하는 연인들이 챙기는 기념일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생일날은 어떤 줄 알아? 혼자서 케잌에 초 꽂고, 혼자서 생일 축하 노래 부르고, 혼자서 케잌 잘르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상상해 봤어? 왜 그렇게 외롭기만 한지. 내게 애인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너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알기나 해?’ 나의 실습이 끝나고 선상생활의 끝을 알리는 갱웨이(Gangway)에서 발을 내딛자마자 그녀의 투정은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끊일 줄 모르고 계속 이어지는 말은 그 만큼 그녀의 나에 대한 기다림의 애절함이 크고 깊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때 난 그녀의 기다림의 의미를 몰랐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갖았던 기다림의 깊이를 모르고 있었다. 평소에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 연락도 없이 늦게 올 때 느끼던 그런 기다림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다양한 인생 경험이 있을 만큼 그리 오래 산 인생도 아니었고 내 모든 것을 바쳐서 기다렸던 적도 없었던 내가 기다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모두 다 이해한다는 듯 대답은 해주었지만 내가 그녀의 기다림의 깊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그녀의 기다림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다름 아닌 김주영씨의 장편소설 『홍어』를 읽은 후였다.
세영 어머니의 기다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나에게 느꼈다는 그런 기다림과 같은 것일까? 마을 앞에는 소택지가 보이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시골 마을의 모습이 담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고 머릿속은 온통 기다림의 의미 찾기에 붙들려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기다림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나가다보니 소설을 사뭇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징검다리를 하나 하나 차근차근히 밟아가며 빠질세라 조심히 냇가를 건너는 여유 없이, 옷이야 젖건 말건 앞만 보면서 냇물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난 기다림의 의미를 한시라도 빨리 찾고 싶었다. 마음속에서는 원작과는 다르게 소설을 재구성하여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나의 그녀도 세영 어머니가 남편을 기다릴 때 느끼는 그런 기다림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세영 어머니의 기다림과 나의 그녀의 기다림. 그리고 기다림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책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영 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기다림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한 줄 한 줄을 차분히 곱씹으며,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차분히 그려봤다. 하얀 가루가 묻어나는 자지가 두 개인 홍어로 상징되는 남편. 그 남편을 잊지 못해 아니 어쩌면 잊혀지는 남편의 모습을 잡아두기 위해 매년 먹지도 않을 홍어를 사다가 부엌문 앞에 걸어두며 하루에도 수 번씩 홍어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을 어머니. 그리고 항상 겨울이 되면 홍어와 닮은 가오리연을 만들어 세영에게 날리게 했다. 정월 보름이 지나면 연을 날리지 않는데도 어머니는 세영에게 그 이후까지 연을 날리게 했다. 집 밖 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자신을 대신해 가오리연이 남편을 찾아주길 바랐다. 가오리연은 연줄이 끊기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건 어머니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연줄이 끊기어 돌아올 수 없는 가오리연이 남편의 떠남을 상징한다고 이해하고 싶지 않다. 연줄이 끊긴 연이 좀더 높이 올라가서, 좀더 멀리 날아가서 자신을 대신해 남편을 찾아주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애써 고집 부려 억지 결론을 내려보았다. 그런 기다림이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난 비슷할지언정 어머니의 기다림이 나의 그녀가 느끼는 기다림과는 다른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그 기다림은 나와 그녀의 사이처럼 둘 사이에 존재하는 기다림이 아니라 어머니와 남편 사이의 기다림은 세영이라는 필터로 한 번 걸러진 기다림이었다. 어머니의 기다림의 주인은 다름 아닌 목숨걸고 건진 유일한 혈육 세영이였다. 어머니의 기다림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기다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세영을 위한 기다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머니는 삼례가 떠날 때 노잣돈으로 쓰라며 그동안 모아왔던 돈을 삼례에게 쥐어준 후 세영이에게 말했다. “사실 니 생각으로 오금만 저리지 않았더라면” 이 말이 계속 나를 채찍질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기다림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세영에 대한 사랑이라고. 가끔씩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말다툼하실 때 어머니께서는 ‘너희들 때문에 산다’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세영 어머니에게 있어 남편에 대한 기다림의 의미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남편의 외도로 인해 벌어진 일 때문에 남편은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6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보내주지 않은 사람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 그런 감정보다는 어머니로서 세영에게 느끼는 모성애가 그 기다림의 주인이었다.
난 어머니가 아니라 세영을 향해서 고개를 약간 돌렸다. 열 세살 소년 세영의 기다림이 어쩌면 나의 그녀의 기다림과 무척이나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는 아버지뿐이다. 세영에게는 아버지가 떠나 있었고,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떠나 있다는 것이 서로 뒤바뀌긴 했지만 그나저나 외롭다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 나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또래의 여고생들과는 다르게 아직 남자친구 한번 사귀어 본적이 없는, 사랑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춘기를 책상 앞에서 보내버린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해주었다.
세영에게는 형제도 누이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가득 차버린 도도한 자태의 노란 두메 양귀비꽃 삼례. 일발에 온 방안을 빛으로 가득 채워버리는 전등이 아닌 구석에서 조그마한 불빛으로 천천히 여명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세영이 삼례에게 키워나가는 감정을 단순히 누이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었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뒤로하고 흰눈이 쌓인 차가운 눈 위를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 읍내까지 갔던 세영의 모습. 사막에서 애닯도록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오아시스 신기루처럼 떠난 삼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림은 세영의 삼례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세영의 삼례에 대한 기다림의 마음이 내게도 와 닿았다. 그녀도 가끔씩 나의 신기루를 보곤 했을까?
‘우와~미래파 향기다! 예전엔 길을 걷다 미래파 향기만 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따라가곤 했었는데’ 그녀에겐 나의 향기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그녀가 내게 사준 선물이기도 한 미래파는 내가 즐겨 바르는 화장품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나를 잊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던 것처럼 보였다. 미래파 향기를 머릿속에 기억해 둔 것이 그랬다. 어머니가 부엌 문 앞에 홍어를 걸어둔 것처럼. 그리고 세영이가 삼례의 주소를 머릿속에 아로새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