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노릇이 버겁기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행동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면서 내가 왜 그런 반응을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와 나는 모자 사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서로 다른 인격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같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이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아이 마음을 이해하기 전에 내가 내 욕구와 느낌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었다. 분석심리학자인 융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기가 가면을 쓴 채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는데, 나도 그동안 내가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 거다.

내가 내 삶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에 도움이 되었던 책이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에코의서재)󰡕였다. 이 책은 융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어두운 존재인 그림자를 탐구하였다. 저자는 융이 말하는 그림자란 무엇이고 개인이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여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융은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했다는데, 책에서 설명하는 온전함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어야 온전함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그림자를 한사코 내 안에서 몰아내려 애쓰던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혹시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를 읽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찾게 되면 같은 저자의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로버트 존슨, 제리 룰 지음, 이종도 옮김. Y브릭로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융 심리학 이론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는 󰡔생의 절반에서 융을 만나다: 소설로 읽는 융 심리학(대릴 샤프 지음, 류가미 옮김. 북북서), <구판 제목은 󰡔융, 중년을 말하다: 중년,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추천한다.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할 때 같은 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의 원인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는 그런 감정이나 행동이 적응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기에 대해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자기성찰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살피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나는 내가 낯설다: 내가 모르는 나, 99%를 찾는 심리 여행(티모시 윌슨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인데, 이 책의 저자는 <적응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은 억압의 결과라고 하는 것과 달리 효율성 때문에 자각의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입장에서 적응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 같다. 책의 결론에서 저자는 ‘자신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과 비의식적 동인들이 일치를 보이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훨씬 더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생각을 많이 하기 보다는 자신에 대해 조금 덜 생각하고 그 대신에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였다. 결국 변화를 원한다면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고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말대로 ‘실천하고, 실천하고, 또 실천하는 것’외에는 더 좋은 방법이 없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자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정신을 알아보는 친구를 통해 새로운 자신을 돌아보는 소설을 소개하고 싶다. 󰡔고슴도치의 우아함(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아르테)󰡕이라는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다.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다른 사람을 어떤 편견을 가지고 보고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던 이야기였다. 또한 내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정신을 갈고 닦아야 하리라는 결심을 다시 한 번 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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