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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프로젝트 - 나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집중의 힘
에릭 퀄먼 지음, 안기순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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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할 일은 많다. 나이가 들수록 나날이 저하되어 가는 체력과 운동 부족까지, 이런 삼단콤보가 따로 없다. 내 일을 좀 덜어줄 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내 형편에 그것도 기대할 만한 사람이라곤 글쎄다. 닥치는 대로 주어진 일을 처리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출근 그리고 퇴근. 집에 와서 허둥지둥 저녁을 차려 먹고,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같이 놀다가 지쳐서 누워 있다 잠드는 나날들의 반복.


나의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오로지 급함의 정도에 따라 이루어졌다. 어찌된 것이 안하면 안되는 일 투성이다. 일단 어린 자녀가 제일 급하고, 회사일이 그 다음 순위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의 저자는 모든 일의 "정답은 집중(p.28)"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대상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정상을 차지하는 큰 승리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p.33) 나는 큰 승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 혼돈과 우울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집중했기에, 책까지 쓸 정도로 성공했을까.


그가 선택한 것은 일명 <월별 집중 프로젝트>였다. 먼저 집중하고 싶은 주제를 선정한다. 그가 선정한 주제는 성장, 시간관리, 가족과 친구, 건강, 관계, 배움, 창의성, 공감, 마음챙김, 베풂, 감사, 마지막으로 그 자신이었다. (물론 나는 그와는 달리 이런 주제만을 선정하는 데만도 너무나 오래 걸리겠지만) 그 다음에는 어떤 달에 어떤 주제를 달성하고 싶은지를 정한 후, 그 달에는 정해진 주제에 집중하기로 노력하는 것이다. 100퍼센트 집중을 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시도 자체가 집중에 대한 다가감이 될 것이므로. 그가 직접 시도한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피곤에 쩔은 나도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그의 한달 이야기는 나의 하루 독서분량이었다. 내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을 때면, 저자가 다음 달에는 어떤 것에 집중하고, 어떤 결과를 이뤄냈을까 궁금해하면서 잠들곤 했다.


특히 2월의 시간관리 집중은 제일 궁금하고, 알고 싶은 주제였다. 집중을 위한 다양한 시도 가운데에서 "하지 말아야 할 목록 만들기를 시작"한 일은 가장 탁월한 방법이었다. 나도 현재 주어진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지금의 혼돈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아니, 그럼 내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이 뭐야?' 스스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니, 어쩌면 참 쉬운 생각이지만 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멀티태스킹은 금지다!


사실, 이 책을 읽어 나가는 일은 내게 어떤 도전이자 집중에 대한 과정 그 자체였다. 요즈음의 나는 매우 지친 상태였고, 거기에다 무언가를 더 시도하는 일은 버겁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까지 있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했고, 또한 끝까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나는 어떤 시도를 하고 싶다는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열망 덕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리뷰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하지는 말길 바란다.) 


결국은 선택과 집중인데, 매우 단순한 원리이면서 또한 몹시 어려운 과제다. 저자의 친구가 말해주는 스트레스에 대한 일화를 통해 어떻게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p.396) "스트레스와 관련해서 내가 최근에 배운 교훈을 말해보려 합니다. 교훈은 이 물 한 컵에서 시작합니다."

친구는 물컵을 집어 들고는 말을 이었다.

"이 컵의 절대 무게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물컵은 비교적 가벼워요. 하지만 실제로 가벼운지 무거운지는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것은 얼마나 들고 있느냐입니다. 잠깐 들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꽤 가볍거든요. 하지만 한 시간 동안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하루 동안 들고 있으면 아마도 구급차를 불러야 할 거예요. 세 경우 모두 물컵의 무게는 같아요. 하지만 오래 들고 있을 수록 물컵은 더 무거워지죠. 

스트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짐을 늘 짊어지고 있으면 짐은 더더욱 무거워지기 마련입니다. 조만간 더이상 짊어지지 못할 거예요. 물컵을 들 때처럼 잠시 내려놓고 쉬었다가 다시 들어야 해요. 기운을 다시 차리고 나면 스트레스를 더 오래 더 잘 견디면서 짐을 짊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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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습격 - 모두, 홀로 남겨질 것이다
김만권 지음 / 혜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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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국은 외로움부 장관을 세계 최초로 임명했고, 영국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21세기를 외로운 세기라 명명했다. 


​외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외롭다’는 ‘외’에 ‘–롭다’라는 접미사가 합쳐진 단어인데, 외는 주로 하나를 뜻한다. 둘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외로움을 뜻하는 lonely는 셰익스피어가 1605년에서 1608년경에 쓴 <코리올레이너스>라는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그러한 감정을 몰랐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물론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존재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감정을 뜻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는 정치철학사 분야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주목했다. 그의 <전체주의의 기원> 속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고독과는 다른 ‘자아 상실’의 감정은 이제 개개인이 느끼는 낱개의 감정들이 아니라 시대를 위협하는 전체적인 감정이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이러한 외로움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외로움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객관적인 지표들과 쉬운 언어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세심한 노력은 내게 분명 사려 깊고 친절했다.


우리는 2015년 포니 사피엔스에서 론리 사피엔스가 되어가고 있다. 네가 곁에 있지 않아도 마치 네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디지털 기술들이 발전하는 만큼 우리는 진짜 인간의 존재를 곁에 둘 필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외로움은 그렇게 홀로 된 자들의 곁에 쉽게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이미지와 소리는 데이터로 전환 가능하다. 우리는 사진을 보거나 전화를 하면서, 마치 그것이 진짜인양 대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이미 크게 중요하지 않다. 원본은 이미 수없이 복제되고, 복제는 원본이 된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누구도 그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요새 등장하는 딥페이크의 등장은 그 틈을 파고든 현실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인류의 결속은 이제 대기업의 상품까지로도 고려되고 있다는 저자의 문장은 너무도 씁쓸하다.


​또한, 외로움의 원인 중 하나인 디지털 기술은 한번 만들어진 서비스는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가능하다. 나는 카페 안에서 바깥의 사람들을 구경할 때가 있는데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을 보며 길을 걸어간다. 현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이미 휴대폰 속 세계에 있다. 그렇게 외롭지 않을 수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영상들은 인터넷만 된다면 무제한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영상조차 숏츠나 틱톡 등 짧게 파편화된 영상물로 변화되었다. 나는 사실 세계의 미래 따윈 알 수 없지만 이제 어디까지 가는 걸까 생각할 때가 있다. 현재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꾀하는 자들은 인류나 지구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하기는 한 걸까도.


​저자가 말하는 다른 하나의 원인은 능력주의다. 한때 정의의 열풍을 불러 왔던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저서 속에서 능력주의의 허상을 파헤친 바 있다. 개개인의 능력 대로 평가하자는 능력주의라는 단어의 표면 뒤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누가 그러지 않았나. 노력도 재능이라고. 이 재능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끝도 없다. 우리는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러나 저러나 산다. 그렇게 외로움은 대물림된 채로 유유히 우리 곁에 자리 잡는다.


​이러한 론리 시대를 바꾸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들은 마지막 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강박적인 자기 책임 윤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에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이 말은 모든 어려움을 나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의미다.


저자의 제안 중 마지막으로는 디지털 시민권이 있다. 현재 시대의 필요한 권리이자 교육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디지털을 빼고는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기술에 대해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정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역량, 그에 상응하는 규범과 태도에 대한 교육은 국가가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p.336) 디지털 난민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동안 외로웠고, 그 외로움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섰고, 그 끝에 나의 외로움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지지 않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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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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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세계 VS 벽 그리고 도시

열여섯살의 나는 한 여자애를 알게 되었다. "너"와는 서로의 기분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터놓곤 했다. 나는 너를 좋아했고, 너는 나를 좋아했다고(고 생각한다.) 그 후 일년이 지난 어느 가을, 너는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겨울에 날아 든 너의 갑작스러운 장문의 편지. 그것이 끝이었다. 그 후 나는 마흔 중반까지 홀로 살아가는 동안, 매번 여성들과는 진정한 의미의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없었다.

p.172 나는 어두운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쯤이면 지구의 중심에 닿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내려간다. 주위 공기의 밀도와 중력이 점점 바뀌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고독해진다.

p. 193 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혼자 남겨진다. 텅 빈 마음을 안은 채. 무슨 일이 있어도 또다시 그런 기분을 맛보고 싶진 않았다.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혼자서 고독하고 조용하게 사는 편이 나았다.

너와 공유했던 도시의 기억을 토대로, 벽 그리고 도시에서 또다른 너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진짜 너는 아니라는 것을. 나는 꿈을 읽는 자였다. 책이 한 권도 없는 도서관에서.

p.45 만약 이 세계에 완전한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 벽이야. 누구도 이 벽을 넘을 수 없어. 누구도 이 벽을 부술 수 없고."

- "이 벽은 누가 만들었나요?" 나는 물었다.

- "아무도 만들지 않았어"라는 것이 문지기의 굳건한 견해였다. "처음부터 여기 있었지."

"꿈을 읽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그림자의 가설이지만)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들,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것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는 작업이었다. 벽으로 둘러쌓인 한 도시의 와해를 막기 위해.

그 도시는 상상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세계일까.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그리고 벽은 뭘까.

2. 복귀 그리고 고야스 상

(또다른 너 때문일까) 그 도시에 남고 싶었지만, 이런 의도와 달리 마흔 중반의 나로 현실에 복귀한다. 그렇지만 나는 원래 있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적응하지 못한다. 새로운 레일이 필요했다.

p.228 나는 그저 이 현실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뿐이다. 이 장소의 공기가 내 호흡기에 맞지 않는다, 라고 바꿔 말해도 될 정도로. 이대로 여기 머무르면 머지않아 숨쉬기도 힘겨워질 것이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다음 역에서 이 전철을 내리고 싶다-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뿐이다,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것,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것.

어쩌면 그때 당시의 어떤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는 언제쯤 나의 장소에 다다를 수 있을까. 테트리스의 조각처럼 꼭 맞는 나만의 장소를 찾고 싶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원래의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Z** 마을 도서관의 도서관장으로 취직한다. 책도 별로 없어서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출카드를 포함해서. 게다가 어느 누구도, 마을조차 신경쓰지 않는 도서관이다. 더불어 나는 이 모든 것이 꿈에서 보았던 그대로임에 적잖이 놀랄 따름이다.

현재의 도서관은 (거의 공짜로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민원도 잦고,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 무언가라도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되었다. 나도 물론 그러한 점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있지만, 일회성 프로그램보다는 어쩌면 독서라는 원론적인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루키 소설 속에는 독특한 인물이 꼭 있는데, 내게는 이 사람이었다. 고야스 상. 자신의 험난한 운명을 도서관에 기대어 살아왔다. 내가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을 돕고, 흔들릴 때마다 차분하게 조언하며 다독인다.

p.358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저 숨결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p.291 하루하루 일하다보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요.

p.448 티없이 순수한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말하자면 마음의 일부가 뜨거운 빛에 노출된 셈입니다. 타버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더욱이 그 사랑이 어떤 이유로 도중에 툭 끊겨버린 경우라면요. 그런 사랑은 본인에게 둘도 없는 행복인 동시에, 어찌 보면 성가신 저주이기도 합니다.

p.452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3. 그외 인물들: 옐로 서브마린 소년, 카페 여자주인

이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있다. 내가 운영하는 도서관의 사서 소에노 씨, 블루베리 머핀이 맛있는 마을 내 카페의 주인인 그녀, 마지막으로 가장 미스터리하고 끝까지 나를 붙잡았던 옐로 서브마린 소년. 그리고 또...

모든 인물들은 서로 조금씩 겹쳐서 내게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이를테면 카페주인 그녀에게서 너의 그림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중요한 것은 그들은 나를 둘러싼 모험을 돕는 인물들이라는 것.

4. 그림자

요새 나와 아이는 그림자 놀이에 푹 빠져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방의 불을 끄고, 오르골을 키면 그림자가 나타난다.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활용하면 훨씬 다양한 그림자 놀이를 경험해볼 수 있다. 마침 이 책을 독서하는 중이어서 그림자에 대해 더욱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그림자, 너의 그림자. 그리고 모든 이의 그림자. 이와 더불어 추천할 만한 그림책이 있다. http://aladin.kr/p/fQ9xm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소설 속에서 그림자는 중요한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알다시피 분명한 건 그림자는 홀로 설 수 없다. 같이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육신이 없으면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만 또 나름대로 언제나 존재한다. 실제로는 물리적인 존재였지만, 가치를 부여한 순간부터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비약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나이고, 나는 과연 나인가? 하는 혼돈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또하나의 관점 포인트가 추가된 셈이다.

p.751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각자의 역할을 맞바꾸고 말았는지도 몰라. 요컨대 지금은 그가 나의 본체로서 활발히 기능하고, 나는 마치 그의 그림자 같은, 이른바 종속적인 존재가 된 거지.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본체와 그림자는 서로 교체될 수 있는 존재일까?

ㅡ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본체건, 그림자건. 어느 쪽이 됐건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내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가 곧 나인 거죠.

5. 또다른 세계로 통하는 매개체: 웅덩이, 구덩이, 방

모험은 이윽고 끝이 난다. 자아는 분열되고, 합쳐진다. 그 끝은 균형이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여진다. 나는 이러한 그만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십여년전의 나처럼 쓰윽- 읽고는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그의 작품을 처음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그만의 방식에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헤매다 보면 그런 표현방식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숲의 성실함이라던가.

개인적으로 오래전 전작인 『태엽 감는 새』를 정말이지 좋아했었다. 어떤 성장이나 거친 단면 같은 것을 묘사한 부분 같은 것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고집스럽게 판 다음, 그것들을 단순하고 산뜻하게 일상 속에 나열하듯이 써내려간 문체 또한 그 당시의 내게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물론 읽다보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지만.

그 전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이끈 것은 우물이었는데, 그것은 임계점을 가진 매개체로써 사용된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웅덩이, 구덩이가 등장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나는 웅덩이와 구덩이를 통해 세계가 바뀌는 경험을 한다. 더불어 고야스 상이 안내해주었던 장작난로가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반지하 방도 비슷한 개념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하여 본다. 희미한 사과 향을 풍기는 사과나무 장작이 타는 방이라니, 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 온기를 느끼고 싶다.

사람은 모두 다 자신만의 변곡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와 당신도 또한 언제 어떤 분기점을 돌았으며, 아니면 그 지점이 더 남아 있을 것인지, 과연 어떨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단상

나는 과거의 추억을 간직한 채, 다시 그 세계의 문으로 향했다. 그는 이제까지 착실하고도 견고하게 쌓아 온 성을 다시금 선보였다. 나는 묘하게도, 조금이지만 과거에 읽었던 그의 책들이 계속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외롭고 고독한 가운데 홀로 그의 책을 읽고, 탐닉했었던 내 모습들까지도.

물론 그 때 읽었던 그의 책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리뷰를 쓰는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정확하게 그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목의 신경쓰이는 생선 가시를 제거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시 과거의 그 문이 내 앞에서 탁, 닫힌다. 그곳에는 묵직한 현재가 기다리고 있다.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

p.766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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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의 세계 일주
데이비드 댐로쉬 지음, 서민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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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한국문학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가을이니, 댐로쉬씨와 함께 문학여행을 떠나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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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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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책 ㅇㅇㅇ책책을 읽고 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나는 저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책이나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는 주저없이 읽어보는 편이다. 이 책 또한 산뜻한 책표지와 제목, 프롤로그만 읽어 보고 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중의 하나다. 물론 몇번이나 읽은 지금은 (다행인가?) 소장중이지만. (구매하려고 보니 표지가 개정되어버려 다른 표지의 책을 구매했는데, 소녀 감성의 첫 느낌이 그립다.)

인문계(?) 체질인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대거 등장하는 SF 작품이나 과학책 중 내가 아는 작품은 거의 없었으며, 저자가 소개하는 작법서 또한 우연히 1권을 소장중이라 그 정도가 아는 게 전부인 수준이니, 리뷰 또한 이러한 관점(SF작가의 에세이인데 비SF적인 독자의 관점)에서 쓰여졌음을 미리 밝힌다.

어쨌거나 내게 이 책은 특별하게 재밌었는데 이제까지 글쓰기에 관해 읽었던 책 중에서, 글쓰기에 대한 혼란스러운 개인적이고 은밀한 여정, 그러니까 뭔가 그 치열한 과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져서였다. 물론 그러한 여정들을 호락호락하게 보여주지는 않으려는 듯 이제까지 저자가 착실히 계속해서 쌓아 올린 SF라는 안개들로 뒤덮여 있어 나는 그 막을 들춰가면서 읽었지만, 이또한 새로운 세계로 입문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또한 저자의 문체가 은유나 비유보다는 제법 구체적인 말들로 서술되어 있어 필요한 부분만 읽어 나가도 제법 맛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러코롬 처음에는 한참 빠져들어 다 읽었는데, 두번째 읽을 때쯤에는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건지, 미로 같은 느낌이 있어서 이 책의 구조를 만들어두고, 그것을 짚어가면서 읽었다. (*이 구조에 대한 오독 가능성은 읽는 분들이 너그러이 봐주시길.)

  • 프롤로그- 작가가 되는 결심의 시초

  • 1장. 세계를 확장하기: 작가의 토대

- SF의 매력 (내게는 저자가 SF 작가가 된 이유로도 읽힌다)

- SF란 무엇인가를 찾아서

- 주제가 없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OR 주제가 주어졌을 때 쓰는 방식

-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밑천이 없다는 두려움

- ** 논픽션 집필 경험 (당사자성은 어디까지가 진정성있게 보일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거기.)

  • 2장.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위하여 참고한 것들

- 작법서들

- 독서생활(본격문학 vs SF소설 탐방기, 작가의 눈으로 독서하기)

- 서평, 비평, 그리고 리뷰

  • 3장. 책이 있는 일상: 말그대로 일상

- 책방 에피소드

- 책상과 작업실을 찾아서

-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마무리의 글: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사실 나는 글을 써보고 싶은가? 싶다, 싶은데! (중략)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내게 작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는 일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쓰게 된 계기 같은 것처럼 어떤 환상 속에 압축되어 머물러 있는 상태였으므로.

"1978년 4월 1일,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을 관람하던 중 소설을 쓰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1회 말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선발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친 순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재즈 찻집을 운영하는 한편으로

매일 밤 부엌 테이블에서 글을 계속 썼다. (출처: 나무위키)"

그래서일까 『책과 우연들』 을 읽는 동안, 다른 책도 많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라는 책도 함께 다시 읽었다. 내게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사물성이 느껴지는 직업이라기보다 한 예술가의 추상적인 애티튜드로 읽힌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몹시 둔해빠진 작업입니다.

거기에 스마트한 요소는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 거립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하루종일 단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입니다.

책이 나왔을 때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인 것입니다.

p.25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두사람의 직업은 사실상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쓰는 장르만 다를뿐. 그런데도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말하는 서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물론 나이나 성별이 다르니 세대나 젠더 차이에 따른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고,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 대비 현재 한창인 자와 어느 정도의 완숙기인 자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차이들을 느끼면서 같이 읽어나가는 일은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김초엽 씨의 글이 글을 쓰는 과정 속 구체적인 사례들이 많아 작업하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어 좋았지만, 두 권의 책을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참고로 하루키씨는 라이터스블록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서술하고 있으니, 이미 거기에서 어쩌면.)

물론 이 책이 아무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그대로 따라해본들 내가 이와 같은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이것 또한 압축된 경험이기에 그대로 따라해봤자 어쩌면 큰 의미는 없을 수도 있지만, 『책과 우연들』 에세이 속 논픽션 경험과 2장의 쓰기의 여정 부분에서 쓰는 자의 세세한 고민들과 자료를 다루는 이야기의 영역이기에 어떤 영감 정도는 도움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읽은 이 책.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이자, 글을 쓰기 위한 자신만의 도구를 다뤘던 방식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판단되기에 장르문학 작가의 에세이임을 감안하더라도, 본격문학이나 다른 글쓰기를 지향하는 자들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싶다.




가끔은 소설 쓰기를 낯선 여행지에 가이드가 되는 일에 비유한다.



나에게는 이 세계를 먼저 탐험하고 이곳이 지닌 매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출발 지점에서, 낯선 여행지는 아직 내게도 안개로 덮인 듯 뿌옇게 보인다.

그렇지만 안갯속에서 초고를 쓰고,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가져와 길목 구석구석을 점차 구체화하고,

또다시 쓰고 고치다보면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공기의 냄새가 점차 맑아지고, 풍경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여행지의 풍경 속에 정말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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