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좌우라는 것은 동등한 높이에서 각자의 영역을 할당 받는 것이다. 남북은 높이가 다르다. 그 출발점에서 부터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과 내용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전혀 다른 역사와 현재성을 가진 국가이다. 그럼에도 두 국가는 국민의 감성적인 면이나 문화등에서 어느 정도의 동질성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문화의 차이성이 아니다. 현재 양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기질의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도 수차례 언급 한 바와 같이 이 책을 삐딱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남의 것은 대단하고 우리것은 낡았다는 사대주의 사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 홍세화가 우리나라가 프랑스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나 배우길 바라는 정신과 제도를 이렇게 조목조목 열거하는 이유는 그곳에 쫒기듯 떠나가 살아야 했던 그가 그곳의 풍요로운 문화속에서 메마른 조국을 안타까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밖에서 보았기에 어쩌면 더 객관적으로 우리를 진단한 그가 우리에게도 풍요로운 빛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가 프랑스를 부러워 하는 이유가 풍족한 자원이나 경제, 넓직한 땅덩어리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이 작은 나라를 등지는 것이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정확한 이성과 아직까지 남아있는 혁명의 기운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정신이 현재의 삶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똘레랑스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객관적이고 냉철함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정신의 표현일 수 있다. 정치에서도 서로의 노선을 인정하는 전제하에서 자신의 의견이 옳음을 피력하는 것이다. 가장 부러운 대목이었던 정치판의 모습과 사회보장제도의 핵심도 결국은 똘레랑스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OECD에 가입하고 세계 수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고 해서 국민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뿐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수 있기를 기원하고 서로의 색깔을 존중하는 모습은 결국 자신이 보호받고 인정받는 길이라는 어쩌면 허무하게 쉬운 진리를 이제는 우리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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