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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나치즘이 탄생한 지 이천 년이 된 시점에, 오백 년 전부터 체구가 크고 눈이 파란 사람들만 살아온 도쿄의 한 바에서 한스와 프리츠가 맥주를 마시고 있어. 한스가 프리츠를 바라보며 묻지.
'프리츠, 넌 모든 게 늘 지금 같았다고 생각해?'
'뭐가?'
프리츠가 반문해.
'이 세상 말이야.'
'당연히 늘 지금 같았지. 우린 그렇게 배웠잖아?'
'그렇지?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걸까.'
그들은 맥주잔을 비우고, 아까의 화제는 잊어버린 채 다른 이야기를 하지.
-본문 65~66p
자히르. 자히르. 자히르.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 서서히 사고를 점령하여 결국 어떤 것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
나와 에스테르, 그리고 미하일. 어쩌면 마리. 그들은 끊임없이 자히르에 속박, 억압되어 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자유다. 구금에서 풀려났고, 아내는 증발했고 부자인데다 유명하다. 나는 자유롭고 얽매인 데라곤 없다.'
고. 그리고 반문했다.
'자유란 뭔가?'
자신의 삶을 돌아봐서도 오랫동안 무언가의 노예로 살아왔고 투쟁을 하는 사람들도 자유의 이름으로 권리를 옹호 할수록 점점 무언가의 노예가 되어갔다고 했다. 부모와 욕망의 노예, 결혼생활, 체중계, 정치체계, 무수한 결심들의 노예.. 마지막은
'자유는 구속만큼이나 큰 대가를 요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그 값을 치른다는 점이다. 비록 눈물 젖은 웃음일지라도.'
라는 말로 맺었다.
그리고 '나'는 역무원에게 철로 사이의 거리를 물었다. 처음 역무원의 대답을 듣고는 삶을 평화롭게 영위하며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깊은, 진리를 따져 묻자 역무원은 프리츠와 같은 대답을 했고 이에 더 이상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자유와 역무원의 에피소드. 그리고 한스와 프리츠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의 궁극적인 지점은 한가지이다. 모든 사람들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것은 과연 그것일까..자히르? 사랑? 신의 사랑..?
이 글을 읽는 내내 한스의 질문을 생각했다. 그리고 프리츠의 대답을 생각했다. 피에 젖은 셔츠 조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프리츠가 한 대답이 옳지 않다는 것을,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역시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파울로코엘료가 던진 질문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아직 명쾌한 대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은 후인 지금은 어렴풋 알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