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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소환되었습니다 - 신화 속 주인공이
조영주 외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4년 8월
평점 :
요즘 앤솔로지 소설책이 많이 나오는데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어떤 책을 읽어볼까 찾던 차에 한국의 전통 요괴(?)랄까 신을 차용하여 현대의 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다소 독특한 설정의 앤솔로지를 발견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조영주, 정명섭, 이현서, 윤자영 작가님이 각각 왕따, 스트레스, 학교 폭력, 성차별 주제를 모티브로 하여 소설을 써주셨는데, 각 단편에 비형랑 신화에 나오는 길달, 조왕신과 도깨비, 아기업개, 단군 신화 속 선녀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작품은 <999번을 죽어야 귀신이 된다>와 <신화 관리청-도채비 요원의 대모험>이었다.
<999번을 죽어야 귀신이 된다>는 길달의 모험이 인상적이었다기보다는 작가님이 그리신 현실 학교의 모습, 학교라는 세계 속에 자리한 소녀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나 눈치 싸움이 무척 잘 그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아이들의 세계도 응당 그렇겠지만 여자아이들의 세계도 무섭다.; 기 싸움, 눈치 게임, 보이지 않는 권력에 여자아이들은 학업 말고도 무척 피곤하리라. 이 소설에서는 따돌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미유 앞에 길달이 나타나 마법처럼 모든 일을 해결해준다. 길달의 능력이 너무 대단해서 속이 시원한 한편, 현실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했다. 특히나 소설 속에 묘사된 대상을 바꾸어가며 따돌리는 설정이, 내 학창시절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에 특히 더 속 쓰리게 느껴졌다. 오늘도 내일도 교실이라는 조그만 세계에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길달 같은 존재가 하나씩은 생기기를. 너무 천진하지만 진심을 담아 바라본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건 <신화 관리청-도채비 용원의 대모험>인데, ㅋㅋㅋㅋㅋㅋㅋ아 정말. 설정이 너무 재밌다. 설화나 전설, 동화를 현대식으로 풀어서 쓴 이야기들은 요즘 들어 무척 흔하지만, 그걸 어떻게 맛깔나게 살리느냐가 이야기의 재미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그러한 부분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든다. 다른 앤솔로지를 볼 때도 항상 정명섭 작가님 소설은 특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정명섭 작가님 소설은 실망이 없다. 재밌게 읽어가다가 조왕신의 환생인 조신왕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요괴가 '요즘 학교는 지옥'이라는 말을 한다. 거기서 순간 멈칫했다. 요즘 교육계, 청소년들의 관계, 학업 등등의 여러 가지를 아주 짧고도 날카롭게 꼬집은 한마디로 느껴졌다. 이 요괴가 인간의 사악한 마음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 또한 마음이 깊이 남았다. 학교뿐만 아니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그런 인간의 나쁜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밌기도 하고 마지막에 인간의 악함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믿고 읽는 작가님의 즐거운 단편이었다.
성차별을 주제로 한 <고려 걸그룹 잔혹사>는 엔터 대표의 악행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저지하는 데서 약간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복수의 삼각형-안개 낀 섬의 초대>는 잘 몰랐던 설화여서 그것이 좀 재밌게 느껴졌다. 특히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타인에 대한 '분노'보다는 '공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소설은 아주 재밌진 않았지만, 작가님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서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써주실지 기대가 되었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해서, 책이라는신화 출판사 덕분에 무척 개취가 버무려진 소설을 즐겁게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