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처럼 생각하는 법 - 스토아주의자는 어떻게 위대한 황제가 되었을까
도널드 로버트슨 지음, 석기용 옮김 / 황금거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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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스토아 철학로마 역사현대 심리치료 등이 적절히 어우러져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이론(이론이라기 보다 좀 더 실천적인 의미를 갖는 ‘지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을 선별해서 알기 쉽게 설명했다. 부분적으로는 역사소설 혹은 에세이같은 재미도 있다마지막 장은 저자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빙의해서  것인데 정말 그렇게 썼을법하고 아주 감동적이다스토아 철학에 대해 처음 접하는 책으로는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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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디레이터 영화 초반부막시무스(=러셀 크로우)에게 왕위를 넘기려다 아들 코모두스(=와킨 피닉스)에게 살해당하는 노인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그러나 그가 쇠잔한 노년기까지 야만인들 사이에 전쟁터를 누볐다는 점, 일기를 열심히   외에는(영화에서 막시무스를 거처로 부른 황제는 무언가를 쓰고 있는데이것이 후대에 “명상록”으로 전해지는 책이 아닐까 싶다.) 영화와 사실이 무척 다르다영화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이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염려하고즉위기간 동안  전쟁을 했다는 사실에 회한에 잠기면서막시무스에게 로마를 통치해 달라고 부탁한다그리고 당신에게 사랑받기를 소원했다는 자신의 아들 코모두스에게, ‘너가 못난 것은  아비의 잘못’이라고 말하다가 살해당한다영화의  설정은 (당연히) 허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우선,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회한에 잠기지 않았을 것이다회한이란 과거에 내가했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거나 그 반대의 사건에 대하여현재 시점에서 후회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황제는 후회하지 않는다(적어도 후회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고 이를 피하려고 노력한다.)과거의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바꿀  이제 와서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가 지금   있는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지만내가 지금 어쩔  없는 것은  그대로 어쩌지 못하므로, 어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자신이 통제할  있는 것과 그럴  없는 것을 나누는데 주의를 기울이고전자를 개선시키고 후자를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이는 현대 심리치료에서 처방되는 중요한 치료수단과도 유사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정신적 압박을 심하게 받는 사람에게당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어쩌지 못하는 것을 인정케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한다가령 어느시험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면이미 치른 시험에 대해 걱정하거나 후회해도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함으로써 마음의 평온함을 꾀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하고 시시한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초조하게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는 내가 어떻게  있는 것이 아니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음먹고 나서는 묘하게 달라지는  심리를 감지할  있었다.


 황제는 로마를 지키기 위한(혹은 확장하기 위한전쟁을 묵묵하게 수행했다그는 연약하고 평생 병치레에 시달렸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처음 그가 전장에 나타났을 때는 허약해 보여 적진으로 한걸음이라도 내딛을  있을까 모두 의심했지만나중에는 전쟁의 신처럼 숭배받았다가령 비가 간절한 때에 그가 기도를 하니 비가 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것이다아마  황제는 한시도 전장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고매일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을테니 둘이 맞아떨어진 날이 있었을 법하다수십  전장을 누빈 그는 이를 자신의 삶과 의무에 충실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을 것이지어떤 이유로든 - 전쟁의 참혹함이든 노년의 우울함이든 - 이를 후회했을 없다


또한 영화에서  황제는 코모두스의 됨됨이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코모두스가 의심이 많고 됨됨이가 부족하다는 점은 영화와 현실이 일치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황제는 코모두스에게 자신의 사후에 너무 빨리  전장에서 벗어나지 말라고만 충고했을 뿐이다도망가지 말라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고   로마로 내빼기전에   이곳에 머무르라고  것이(그렇지 않으면 원로회가 반역죄로 추궁할 여지가 있으므로) 전부였다그는 코모두스가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코모두스가   없는 것을 명령하지 않았다다만 코모두스의 스승으로 하여금 코모두스에게 계속해서 스토아 철학을 가르칠 것을 맹세하라고 요청했을 뿐이다혹시 누군가 그에게 코모두스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면 황제는 “자기 행동이 아이에게 명예를 주는 것이 아니듯 아이의 행동이 자기에게 불명예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스토아철학의 선배를 인용했을 법하다.


스토아철학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철학이다운명을 받아들이고분노를 다스리고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최선을 다하라고 하니  시대에는 낯간지럽게 느껴지지만 의미는 가장 나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내가 노예이고 주인에게 두들겨맞아 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되었다고 하자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리는 낫게 될  없다그러나 황제가 따를 만한 철학자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에픽테토스는 이렇게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 최선을 다했지만아마 노예였어도 주어진 여건 안에서 스토아철학에 따라 살아갔을 것이고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로마황제는 사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뿐이다로마 황제로는 시저도 있고 네로도 있고 무슨무슨누스로 끝나는 황제들이 여럿 있는데작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에 대해서 글을 써놓고 ‘로마황제처럼 생각하는 How to think like a Roman Emperor’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다조금 불성실하게 제목을 지은  같지만책을 읽다보니 A Roman Emperor  아니라 The Roman emperor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칭할  ‘The philosopher’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에 따라 자신을 다스렸고, 제국을 지켰고, 철학자로서 가르침을 남겼다. 이런 황제가 또 누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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