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wasulemono > 지적 엄정성과 정당성으로 본 문학비평

90년대 이후 우리 문학비평은 시류나 정치적 동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지금까지 지겹도록 언급되어온 얘기를 여기서 입 아프게 반복할 생각은 없다. 우리 문학비평은 맑시즘을 건너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생태학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 전공자가 아니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각종 주의에다 푸코, 들뢰즈, 크리스테바, 비트겐슈타인 같은 이론가들의 이름들을 무수히 건너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수한 주의와 이론가들에 대한 섭렵과 언급이 과연 지적 엄격성과 현실적 정당성을 깊이 캐묻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는가. 여기서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저자 김영건은 영미분석철학 전공자답게 논리적 엄격성이라는 난마같은 도구를 가지고 우리의 문학비평에 대해 비판적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라따니 고진의 글을 표절했다는 의혹으로 곤혹을 치른 문학비평의 대가 김윤식에 대해서는 그의 지적 고민의 근저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그의 논의가 지적 엄격성과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각종 현란한 어구로 말의 성찬을 늘어놓는 식의 젊은 비평가들의 문학비평에 대해서도 날라리같은, 그 플라넬같은 성격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감하는 부분이다. 해마다 문학비평은 그 현실적 정당성에 대한 캐묻기를 생략한 채 마치 유행에 따라 철지난 옷을 벗어던지듯 새로운 것만을 향해 나갔다. 물론 사유는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고 학문적 논의가 반드시 현실과 정확히 부합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학비평은 김영건의 비판에서 상당 부분 자유롭지 못하다.

또 하나 이 책에서 주목을 요하는 부분은 김영민을 시발로 한 탈식민주의적 글쓰기에 대한 비판이다. 다만 여기서는 김영민의 글이 주 대상이라서 조한혜정같은 사람의 논의에까지 정당성을 가진 비판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한때 논문중심주의에 갇힌 우리 학문의 병폐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글쓰기를 주창해서 참신한 느낌을 주던 김영민의 생각이 여기서는 무참히 깨지고 있다. 김영민의 진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김영민 자신도 논문이라는 형식 자체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안일하고 폐쇄적인 성격을 띤 학문 풍토를 비판하는 매개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라는 그의 저서에서도 얼핏 느끼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김영민 식 글쓰기 자체의 가치도 상대적임을 면치 못한다. 우리 현실에 기반한 학문은 중요한 가치지만 그렇다고 학자가 논문 형식에서 벗어난 수필류의 글만 쓴다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섣부른 탈식민성이 오히려 알맹이 없는 잡담으로 전락한다는 것이 과연 우리가 바랄 바인가? 루카치나 아도르노같이 논문 형식을 탈피하면서도 논문 이상의 의미를 담은 자유로운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적 엄정성과 상당한 공부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김진석처럼 섣불리 대가 흉내를 내는 것에 대해 김영건씨도 지나가면서 비판했지만 나 역시도 같은 느낌이다.

김영건은 요즘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생태문학과 생태주의에 대해서도 그 논의의 엄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지적 사대주의와 그 대척점에서 생태주의가 지적 엄정함을 상실하며 낭만주의적 유아론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비중이 덜하지 않은 페미니즘이나 90년대 이후 독자적인 입지를 굳힌 신보주의적 동양주의 문학비평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의아함을 던져준다. 저자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준비 부족 탓일까. 이 책에서 보여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저자에게 신뢰를 느낄 수 있지만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전적인 침묵은 저자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유보하게 만드는 맹점이다. 검증할 수 없는 탓이다.

김영건은 문학 비평에 대해서 할 말을 했지만 문학비평가 그 누가 나서서 이 성실한 비판에 답을 해줄까. 기다려보자. 아마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명의 논객을 상대하기 귀찮아서이거나 누구나 가진 약점에 대해 고달픈 변명을 늘어놓기 뭐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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