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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동정과 공감은 우리 마음속에서 전혀 다른 맥락의 생성 과정을 거친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감정이 마음 속에 흐르는 공감이라면,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연민이 마음 한구석에 고이면 동정이라는 웅덩이가 된다. 웅덩이는 흐르지 않고 정체돼 있으며 깊지 않다. 동정도 매한가지다. 누군가를 가엽게 여기는 감정에는 자칫 본인의 형편이 상대방보다 낫다는 얄팍한 판단이 스며들 수 있다. 그럴 경우 동정은 상대의 아픔을 달래기는커녕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것 밖에 안 된다.
김지하 시인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갈라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종교학자 프리드리히 폰 휘겔 : 위대한 것 앞에서 침묵해야 한다. 침묵의 내면에서 말을 키워라. 말로만 하는 토론은 왜곡만을 가져다줄 것이다.
조선 시대 문인화가 김유근 : 말하지 않아도 뜻을 전할 수 있으니 침묵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건대, 침묵하면 세상에서 화를 면할 수 있음을 알겠다.
나는 노숙자(homeless)일 뿐이지, 희망이 없는 (hopeless)건 아니야.
둔감력 :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둔감력은 무신경이 아닌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후흑학 - 청나라 말 사상가 이종오
난세를 평정한 영웅호걸의 특징은 후(厚)와 흑(黑)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후는 얼굴이 남보다 두터워 감정을 쉽게 들키지 않음을 뜻한다. 흑은 글자 그대로 검은 것이다. 그냥 검은 게 아니라 타인이 마음을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새까맣다는 의미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言)에는 묘한 뜻이 숨어 있다. 두번 생각한 다음에 천천히 입을 열어야 비로소 말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는 나름의 품격이 있다. 그게 바로 언품이다.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낄 때 행복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단어 커뮤니케이션의 라틴어 어원은 커뮤니카레(communicare)이다. 교환하다, 공유하다 등의 뜻이 담겨 있다. 말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소통은 혼자 할 수 없다. 소통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며, 화자와 청자가 공히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때 가능하다. 상대의 귀를 향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내던지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독백만 주고 받는 일인지 모른다.
당신 멋져! 당당하게 신나게 살고, 멋지게 져주자.
율곡 이이는 국가 경영을 창업(創業), 수성(守成), 경장(更張)의 세 가지 단계로 분류했다. 창업은 초심자가 관통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자가 겪는 관문이다. 수성은 지키는 행위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잘 관리하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승자의 몫이다. 경장은 도전자, 승자, 패자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일이다. 경장은 전환이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묵은 제도를 새롭게 개혁하고 확장하는 일이다. 유연하게 혹은 탄력적으로 사태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다.
편견의 감옥이 높고 넓을수록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상대의 생각을 교정하려 든다.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과 진실을 본인이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은 편견의 감옥 바깥쪽에 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명령과 질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명령이 한쪽의 생각을 다른 한쪽에 흘려보내는 '치우침의 언어'라면, 질문은 한쪽의 생각이 다른 쪽에 번지고 스며드는 물듦의 언어다. 질문 형식의 대화는 청자로 하여금 존중받는 느낌이 들게 한다. 때에 따라 듣는 이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기도 한다.
사마천이 쓴 사기편에는 네 가지 사귐의 유형이 나온다. 첫째는 의리를 지키며 서로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친구 외우(畏友), 둘째는 친밀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친구 밀우(密友), 셋째는 즐거운 일을 나누면서 함께 어울리는 친구 일우, 넷째는 평소 이익만 좇다가 나쁜 일이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는 친구 적우(賊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