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나와 마주한 적이 있는가? 언제 부터인지 몰라도, 나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회사의 직급과 누구의 아빠로 누구의 남편으로 남들과 비교당하면서만 살고 있는 것 같다.

남들보다 앞서가고 잘 살기 위해서 물질적인 부를 이루기 위해서 나를 버리면 살아온 것 같다.

진정한 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가 아닌.. 어딘가에서 널부러져 있을 진정한 나에게 손을 내밀어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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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써 프로이트가 선택한 출발점은 무의식이었습니다. 그는 환자를 보다가 꿈, 환상, 공상, 말실수 와 같이 흔한 현상에서 인간의 마음에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 그러면서 그는 마음을 의식(conscious), 전의식(pre-conscious),무의식(unconscious)으로 나누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땅덩어리를 나눈 것 같다고 해서 이것을 지형 이론이라고 합니다.

 

구조 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봅니다. 그들의 이름은 이드(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이드는 욕망의 대변자입니다. 자아는 중재아입니다. 초자아는 자아 이상(ego ideal), 도덕, 윤리, 양심의 대변자입니다. 이드는 욕구를 주장하고, 초자아는 금지된 일을 못하게 막아서거나 이상을 추구하고, 자아는 타협점을 찾습니다.

 

이런 타협성을 이끌어 내는 자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힘있는 자아는 고통스러운 일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자아의 힘을 키워 놓아야 합니다. 자아의 힘을 키우려면 다소의 시련은 필수적입니다.

 

자존심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자존심이 낮은 사람의 대인관게는 정말 어렵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에서 채우려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욕동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삶의 욕동인 리비도(Libido - 성 에너지)와 죽음의 욕동인 타나토스(Thanatos 공격성, 공격적 에너지)입니다.

 

남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사람에게는 남에게 잔인하게 대하고 싶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나치게 깔끔한 사람의 마음에는 아주 더럽게 살고 싶은 욕구가 숨겨져 있습니다.

 

불안은 나를 행동하게 하는 큰 동력입니다. 그러니 불안이 찾아오더라도 불안한 감정을 내몰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시험이 코앞에 닥쳤을 때 불안한 마음이 나에게 서두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재촉을 하기에 벼락치기 공부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포 중에서 제일 흔한 공포는 무대 공포 (performance anxiety)로 사회 공포증(social phobia)의 한 종류입니다. 이러한 무대 공포의 뒤에는 비판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어려서 집에서 한 작은 일들이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받는 것으로 끝났다면 아마도 무대 공포에 시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무대 공포는 늘 어른들이 나를 비난할 것을, 내가 시원치 않아서 나를 떠날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온 결과입니다.

 

우을 증상 역시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 입니다. 너무 앞서 나가지 말고 이제는 좀 속도를 줄이면서 천천히 나와 내 삶을 성찰해 보라는 경고이자 기회입니다. 내 자아와 내 초자아를 살펴보세요. 자아가 너무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초자아가 너무 강해져서 내 스스로 나를 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은근한게 숨겨진 자살행위기 있습니다. 건강에 해로운 일을 꾸준히 또는 충동적으로 하는 것도 일종의 자살 행위입니다.

흡연,폭음,폭식, 약물 남용이 그러합니다. 자신에게 나쁜 줄 알면서도 그러는 것은 불안을 해소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처벌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벌 받는 괴로움을 통해 죄책감을 덜어내는 행위에서 얻는 만족감이 해로운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동기가 됩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해 말합니다.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이고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덜어내야 좋은 감정이지만 고독은 추구해야 할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열등감은 어린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어려서 부모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비판적이면 열등감의 싹이 자랍니다. 비판적이라 함은 어린아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실수를 부모가 관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개 부모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원인이지요. 예를 들면 친척집 다른 아이들과 자기 아이를 비교하는 경쟁심이 있다든지, 부모의 완벽주의로 인해서 아이의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역시 부모의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열등감은 세대를 이어 전해집니다.

 

시기심이란 단어는 모든 언어권에 있습니다. 인류의 본성입니다. 시기심은 정신분석학에서도 중심 개념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입니다. 예를 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형제간 경쟁, 승화에서 시기심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얼마나 잘 하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내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온통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굴을 붉히고 수줍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원하는 나>를 <내가 원하는 나>로 착각하고 살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짜 나를 지키려면 늘 세심하고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다가 가고 싶지 않는 곳에 엉뚱하게 가는 일을 피하려면 애를 써야 합니다. 진짜 나를 지키려면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여럿이 모여 웃고 떠들지만 끝나고 나면 허탈한 모임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 자리의 단골 메뉴인 남의 뒷이야기, 남이 어려움에 빠진 이야기는 늘 자기애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지만 껌과 같이 단물은 빠지고 턱관절만 아픕니다. 남을 너무 씹으면 내 마음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치아가 닳아 버립니다. 남이 원하는 것을 너무 의식하고 그것에 맞추려고 하면 진짜 나를 지킬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자아의 모습이 변해 버립니다. 남이 나를 싫어하거나 떠날 지라도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깊은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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