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김형태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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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경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한 책.. 저자의 양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대단하다.

나도 이렇게 리솜적인 지식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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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

상황를 꿰뚫어봄으로써 닮음과 다름을 새롭게 가르는 투시력

오래된 미래를 보고 활용하는 원형력

스스로를 죽여 새롭게 태어나고 자신의 몸속에서 미래의 적을 키우는 생명력

무겁게 중심을 잡아주지만 동시에 가볍게 떨치고 날 수 있는 중력과 반중력

답이 없어 보이는 불가능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해결 가능한 상황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재정의력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칼로 인재를 조각하려 들지 않는다. 미켈란젤로처럼 인재를 뒤덮고 있는 회반죽을 털어내고 원형을 꺼내줄 뿐이다.

 

과학의 발전도, 경제나 기업의 발전도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이요. 보았던 것이라도 다시 새롭게 보는 것이다.

 

테셀레이션 (tessellation) : 동일한 기하학적 모양을 겹치지 않게 반복적으로 배열함으로써 특정한 평면을 빈자리 없이 채우는 공간 분할방식이다. 모자이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의 성지는 마호메트가 태어난 메카이고, 다음이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는 메디나, 그리고 세번째 성지가 예루살렘이다. 하지만 십자군에게는 1위도, 2위도, 3위도 모두 예루살렘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를 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전혀 부담 없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상대방이 스스로 빗장을 풀고 호의를 베풀게 되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호의라도 게임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 이제부터는 인지부조화를 정말 혐오하는 그의 뇌가 알아서 답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에 복합그룹 할인 (conglomerate discount) : 투자자들은 이것저것 다양한 업종의 기업이 섞여 있는 복합그룹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슨의 역설 (Simpson's paradox) : 데이터 전체를 대상으로 평균을 구해 얻어지는 결론과 데이터를 성격이 다른 작은 그룹으로 구분해서 평균을 구한 결론이 와넌히 달라지는 경우다. 정확히 표현하면 성격이 다른 부분들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합해서 평균을 내면 잘못된 결론을 유도하기 쉽다는 말이다.

 

전쟁이든 비즈니스든 진짜 고수는 이미 이겨놓고 싸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승전후구전 (勝戰後救戰)의 의미이기도 하다. 치밀한 준비와 사전 전략에서 승패는 이미 갈리고, 전쟁은 이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예술의 역사는 어찌 보면 파과의 역사 그 자체다. 기존에 존재해왔던 예술에 대한 정의 자체를 끊임없이 파괴하며 진화해왔다는 뜻이다. 미술의 역사는 미술에 대한 재정의의 역사다.

 

쿠르베형 리더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리더다. 쿠르베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회화의 주제로 선정한 것은 평범하지 않은 획기적 도약이다.

에셔형 리더는 다름, 갈등, 대립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닮음, 화해, 조화를 볼 수 있는 리더다.

모네형 리더는 순간적 변화를 포착해낼 수 있는 감각을 갖춘 리더다. 모네형 리더는 남들이 놓치기 쉬운 순간적 인상을 잡아내는 감각이 뛰어나다.

세잔형 리더는 사람이든 시장이든 기술이든, 그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 원형을 볼 수 있는 리더다. 조직과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구성원들은 본질과 원형에 충실한 리더에 마음이 끌린다.

몬드리안형 리더는 기본에 충실한 리더다.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유혹들을 물리치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리더다.

브란쿠시형 리더는 곁가지는 모두 쳐내고 사물의 본질만 남긴다.

베르니니형 리더는 지극히 치밀하고 섬세하다.

미켈란젤로형 리더는 열려 있음과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리더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능력을 알아보고 키워주고 활용할 수 있는 리더다.

피카소형 리더는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본다.

고흐형 리더는 열정적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리더다. 그의 언행에선 나선형 에너지가 넘쳐난다.

리히터형 리더는 생명, 즉 살아 있음을 그린다.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다. 결국 경제를 재정의한다는 말은 무엇이 잘사는 것이냐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결핍의 경제학이란 책에 의하면 가난이란 경제적 여유뿐 아니라, 뇌의 여유, 즉 정신적 여유가 결핍된 상태로 정의된다. 빠듯한 돈으로 이것저적 처리해야 할 것이 많고 직장도 안정적이지 못하면 노의 여유가 없어진다. 뇌에 여유가 없어지면 집중하지 못하고 서두르고 실수를 하기 쉽다.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성과가 안 좋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좋은 직장을 유지하기 힘들다. 다시 빈곤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형태를 강조한 대표적 유파가 사실주의다. 사실주의의 거장 구스타브 쿠르베는 내가 천사를 그리길 원한다면 내게 그 천사를 보여주시오라고 말했다. 회화의 본질은 실제 사물이나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사실주의와는 반대로 색채가 형태를 리드한 유파가 낭만주의다. 낭만주의로 오면서 화가의 주관적 감정이 격정적인 색채로 표현되었다. 낭만주의는 숨막힐 정도로 균형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에 반발해서 태동한 것으로, 자유로운 영혼이 기반이다.

 

형태를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파가 인상주의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리려 한 것은 빛으로 환원된 순간적 인상이다.

 

뛰어난 예술가를 마스터형과 천재형으로 구분하고, 마스터의 창의성은 실험적 창의성이요, 천재의 창의성은 개념적 창의성으로 설명했다. 마스터라는 말에서는 시간의 풍파를 견디어내고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그 누구도 근접하기 힘든 내공이 느껴진다.

마스터형 화가가 세잔이고, 천재형화가가 피카소다.

 

키스가 왜 생겼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 조금은 황당한 주장은 원시 시대 사냥을 다녀온 남자가 여자들이 식량을 훔쳐먹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영혼이 호흡을 통해 몸의 안과 밖을 충입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영혼을 공유하기 위해 입맞춤이 시작되었다는 가설도 있다.

 

원형엔 군더더기가 없다. 화려한 장식도 없다. 그대로 민낯이다. 그래서 순수하기도 하다. 브란쿠시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 간의 조화다. 브라쿠시의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상반되는 것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하나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식물학에선 뿌리와 줄기가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 식물을 크게 두 개의 원형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수목형 (arborescent)식물이고 다른 하나는 리좀형(rhizomatic)식물이다. 뿌리로 부터 나무 끝에 있는 잎까지 가는 길, 즉 영양분의 공급경로는 하나로 정해져 있는 식물을 수목형, 즉 나무형 구조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땅속 줄기 식물 감자, 고구마 등을 리좀형 식물이라고 하고, 리좀은 위계가 없고 수평적이고, 시작과 끝이 없고 지속적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만 존재한다. 또한 중심과 주변의 구분도 없다. 중심이 없다는 것ㅇ은 달리 보면 어느 것이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작품을 의도적으로 미완성으로 남겨놓는 기법을 논 피니토 (non finito)라고 한다. 완성 작품엔 최종적 결론만 있는 데 반해 미완성 작품엔 작업 과정에 대한 정보까지 들어 있다. 더불어 나머지 부분이 완성됐다면 최종적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력도 자극한다.

 

아르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예술이란 뜻이다. 아루누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예술계 전반의 사조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공장으로 대량으로 찍어내는 획일화된 직선적 모양의 제품에 대항해 등장했다. 자연으로부터 유래된 곡선, 특히 덩굴 식물 같은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적 작가는 체코의 알폰스 무하다.

 

기업은 어떻게 적들의 등장에 대비할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이런 적들은 사전에 감지할 수 없다. 유일한 답은 나 스스로의 품속에서 미래의 적을 키우는 것이다. 이렇게 내 안에서 키운 적이 나를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기업도 계속 죽어야 계속 살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육체는 중력에 쉽게 지배당한다. 이렇게 보면 반노화는 곧 반중력이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밑으로 잡아끄는 중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튕겨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무덤 (grave)과 중력 (gravity)의 어원이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력에 대한 순응을 상징한다.

 

익숙함도 극단으로 가면 중독이 된다. 술이든 담배든 게임이든 익숙함이든 어디에 중독되면 지금 이 순간 그리고 그것만이 중요해진다. 최근 뇌 연구에 의하면, 지금 이 순간, 현재만을 생각하는 뇌를 복원시켜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게 중독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선원급법을 개발했다. 기하학에 근거한 과학적 선원근법이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시대정신은 신이 아닌 인간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급법은 르네상스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가장 혁신적 산물이다.

 

역원근법은 비잔틴 원근법, 러시아 원근법으로 불리며, 원근법은 화가인 내가 중심이 되어 바로 여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재현하는 기법이다. 내가 바라본 세계다. 그래서 인간중심적 시각이다. 이에 반해 역원급법에서는 보는 이가 내가 아니다. 화면 안 깊은 곳, 또는 화면 밖 저멀리 어딘가에 있는 그 누군가다. 그 누군가를 신이라고 한다면, 바로 신이 본 세계를 그리고자 한 것이 역원근법이다. 그러니 우리 눈에는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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