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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심리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4월
평점 :
인간이 느끼는 최초의 상실은 장소의 상실일 것이다. 아기는 출생 순간 엄마 배 속의 안락하고 평화롭던 공간을 빼앗기는 것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 떄 아기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인간이 경험하는 최초의 심리적 조건이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도 있다.
소중한 대상을 잃었을 때 그로부터 거두어 온 열정은 일시적으로 다른 대상에게 투자된다. 가장 흔한 경우는 문득 일이나 학업에 몰두하는 것이다.
고통을 참는 것보다 도피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나쁜 대상에 빠져든다. 아픈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감각을 몽롱하게 만들며 애도 작업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폐 공간, 외부 세상이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고 더 이상 죽음과 상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장소에 숨어든다. 자폐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일 뿐아니라 심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엄마의 사랑을 잃은 아기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의 공간은 정신 내부에 만들어진다. 고통을 주는 외부 현실을 마음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위안을 주는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안정감을 추구한다. 그것만이 상실의 위협에 처한 아기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니다.
성인 신경증 환경의 내면에도 심리적 자폐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타인과 대화하거나 남들이 이끄는 대로 돌아다녀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늘 혼자 존재한다. 내면에 당구공처럼 단단한 핵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은 누구에 의해서도 침범당하거나 훼손되지 않는다. 외부에서 보면 그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다가갈 수 없게 느껴진다.
이십 대 내내 나는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는 동전처럼 죽음을 손끝에서 만지작거리는 느낌이었다. 때로 죽음 속에는 절정의 아름다움이 내포되어 있는 듯 읽혔다.
집단 나르시시즘은 개인의 나르시시즘보다 인식하기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이 나와 우리 가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며, 우리만이 훌륭하고 지성적이며 품위 있다.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 사람을 미숙하고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어떤 광적인 연사가 나와 우리 가족, 대신에 국가와 민족, 종교 등을 내세우며 우호 집단의 대중 앞에서 연설한다면 그는 애국심이나 신앙심이 높은 사람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집단 구성원의 나르시시즘은 더욱 의기양양해지며, 사람들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그의 연설은 합리적인 듯 보이게 된다.
영혼이라는 쇠가 슬픔으로 풍화되고 경증 우울증으로 녹이 슨다면, 중증 우울증은 영혼의 구조 전체를 갑작스럽게 무너뜨린다.
사랑을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아주 쉽다. 에로스의 뒷면이 타나토스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주었던 에로스르 되돌려 받을 때 그것은 모양을 바꾸어 자기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화한다. 리비도를 가만히 두면 자기 파괴적인 길로 접어드는 일은 당연한 수순 같기도 하다.
애도 작어브이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우리는 슬퍼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딱딱해지고, 몸이 아프고, 삶이 방향 없이 표류하게 된다. 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뒤늦게라도 울음이 터져 나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 울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눈물은 한 사람의 가장 위대한 용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간혹 어떤 이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나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 때 부종에 시달리고 있었는 데, 어느 순간 부종의 고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나느 그에게 어떻게 부종을 이겨 냈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실컷 울어서 부종을 몸 밖으로 내보냈다네."
불교의 출가처럼, 세속적 만족을 위한 모든 것을 놓아 버림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가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일도 있다. 나날의 삶에서 신성을 찾는 일은 대체로 더하기보다는 빼기의 문제였다.라고 힌두교 성자 라마 수리야 다스는 말한다. 빼기의 문제란 바로 떠나 보내기, 분리되기의 의미일 것이다. 떠나보내는 일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공간을 내면에 확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