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의 인생의 끝에는 최악의 결과가 있을까? 아님 최선의 결과가 있을까?
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사는 것이 그렇게 흥미진진하지는 않겠지.
가와타니 신지로라는 중년의 남자.
묵묵히 볼트를 용접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천직만으로 알고 있다.
이 주변머리 없는 남자는 땅투기도 못하고, 새가슴이어서 공장 확장도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사는 데 연연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찾아온 소음으로 인한 주변 주민들과의 마찰. 그들은 교양으로 중무장하고 어려운 말들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가와타니를 압박해온다.
가와타니는 집에서는 딸과 아들에게 소외 당하고, 회사에서는 다루기 힘든 직원들의 눈치를 보고, 대화가 끊긴 아내와 무미건조한 부부생활을 억지로 이어가고
납품 업체에서는 을의 입장에서 간과 쓸개를 다 빼주고 살아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주변 사람들의 꼬드김으로 프레스 설비 투자를 결심하고
세상에서 가장 문턱이 높다는 은행에 대출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듯 은행과 주변사람들은 그에게서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 가와타니를 보면서 나는 그와 같이 바보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자기의 아버지를 보면 될 것 같다. 대다수의 아버지들은 기와타니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은행은 언제나 분주하다. 돈이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 앞에서는 민감하기가 극에 달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돈을 다루는 은행원 후지사키 미도리는 하루 하루가 따분하기만 하다. 특히 일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배려라고는 절대 없는 자기의 출세에만 눈이 먼 직장 상사를 볼 때면 저러고 살면 좋나? 라는 생각이 들며 직장에 대한 회의감까지 든다.
결혼을 해서 이 직장을 보란 듯이 떠나고 싶은 데, 그 많은 남자 중에서 또 자기의 남자는 없다. 우울한 일상의 연속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지점장이 결정타를 날린다. 성추행. 응큼한 중년의 남자가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술 취한 자신의 몸을 더듬은 것이다.
생각만 해도 메슥거림이 밀려오는 데, 그 잘난 지점장은 사과를 할 줄도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출세에만 지장이 오는 것에 온 신경을 쓸 뿐이다.
미도리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은행을 그만 두기로 마음 먹는다. 후지사키 미도리가 답답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동네에 있는 아무 은행에나 가 볼일이다. 그곳에도 미도리와 같은 착하고 여린 우리의 딸들이 앉아 있을 것이다.
야쿠자라면 어깨에 힘이라도 주고 다닐 텐데, 역시 무엇을 하든 최고만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노무라 가즈야, 나이프로 힘 없는 사람들을 위협해 돈을 강탈하던 동네 양아치였던 그는 빠칭코 자금 마련을 위한 톨루엔 도둑질이 발화점이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야쿠자의 위협을 받을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금고털이를 하고 결국에는 은행털이까지 감행한다. 가와타니나 미도리처럼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니기에 가즈야의 이야기는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어둠의 세계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사람을 너무 믿지 마라”라는 것이다.
불량 소녀, 집안에 불만을 가지고 가출을 감행하여 거리를 방황하는 미도리의 동생 메구미. 가출 이유는 모범생인 언니에 대한 반발심.
어처구니가 없는 아이다. 삶에 대한 꿈이 있기는 한 것인지, 그 어린 소녀는 자기의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노무라 가즈야를 만나고 그를 쫓아다닌다. 자신이 주체성이 없는 메구미, 그냥 세상이 불만인 메구미.
메구미를 보면서 뭔지 모를 답답함이 밀려왔다. 미래에 대한 방향성은 없고, 현실만 생각하고 현실에 불만을 쏟아내는.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메구미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이런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메구미가 부디 철이 들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 진다.
이런 우울한 4명이 은행을 털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가즈야와 메구미가 털었고, 미도리와 가와타니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그들의 최종 도피처는 미도리의 직장인 갈매기 은행의 연수원 그 곳에서 그들은 숨막히는 협상의 진수를 선보인다.
우선 돈의 분배. 미도리는 어차피 인질이라는 신분으로 끌려온 피해자이므로 제외.
메구미는 미성년자이고, 돈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미도리가 메구미를 데려가겠다고 했으므로 제외.
돈에 대해서는 가와타니와 가즈야의 협상만이 남았다. 하지만 반반으로 나누면 간단하게 끝났을 일이,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더 불행하기에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왜일까?
특히 자신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도 없고, 일할 공장은 이미 복구하기 어렵게 되었고, 자신의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못하다는 가와타니의 말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았다. 가즈야보다는 설득력이 몇 백배 묻어나는 대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돈에 대한 배분이 마무리되고 각자의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인생의 최악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법. 가즈야는 친구를 너무 믿지 말라는 선인들의 말을 무시하고 또다시 고집을 부리다 친구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는다.
야쿠자의 등장 이제는 경찰에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최악의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최악의 끝에는 희망이 보이는 법.. 타이밍 좋게 등장한 경찰로 이 사건은 종지부를 찢게 된다. 어쩌면 가장 불행한 인물은 조직에서 무시당하고 쫓겨나고, 이제는 경찰에 잡혀가는 야쿠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권선징악이라는 세상의 진리다. 부디 가즈야, 메구미는 개과천선이라는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가와타니 아저씨에게는 삶의 여유를 미도리에게는 믿음직한 멋진 남자를 주시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