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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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고대국가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영토, 율령체계, 그리고 종교다. 영토는 국가가 될 수 있는 통치영역의 확보이며, 율령체계란 율과 영, 즉 벌률과 행정체계다. 그리고 종교란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확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인들은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텐데 당시엔 메스컴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발달된 종교는 통치이념으로서 국민화합을 이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 때문에 세계 모든 민족이 고유의 신앙이 있었으며 결국 발달된 종교를 수용하여 고대, 중세사회를 이끌어갔으니 서양은 기독교, 동양은 불교가 1000년간 두 문화권의 주도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

 

벌륭사가 왜 좌우대칭을 벗어났는지 나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지만 정형에서 일탈했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주는 중요한 의미는 알 만하다. 그것은 아스카시대 문화 능력의 성숙이다. 일정한 규범이나 전통에서 홀연히 벗어나는 것은 문화의 자기화가 이루어진 다음의 이야기다. 자신감이 부족할 때는 주어진 규범에 충실할 뿐이다. 오직 자신있는 자만이 전통에서 벗어나서 그 전통의 가치를 확대해간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벌륭사 가람배치가 정형에서 일탈했다는 것은 그만큼 아스카시대 문화 능력이 자신감에 차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스카시대의 불상 조각은 크게 도래 양식과 도리양식으로 나누어 본다. 도래 양식은 한반도에서 가져왔거나 이를 충실히 본받아 제작한 것이다.

 

일본인에게 대개 자연은 관조의 대상이고, 한국인은 자연과 격의 없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좋아한다. 일본의 정원과 한국의 정원에서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두 민족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일본 정원의 나무는 잔가지까지 인공의 자취가 드러나도록 매만져야 하고, 한국 정원에서는 본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 일본의 정원에서 인공을 가하지 않은 것은 불성실로 비치고, 한국의 정원에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것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참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대조적이다.

 

루돌프 아른하임의 시각적 사고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시각 습관은 오른쪽, 왼쪽이 아주 달라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순방향이며 반대로 가면 역방향이 된다. 육상경기에서 400미터 트랙을 돌 때 왼쪽으로 도는 것도 이런 시각적 습관과 연관된 것이다. 그러나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에 나오는 도원경이란 종점이어야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역방향은 바로 거기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막다른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일본의 다성으로 추앙받는 센노 리큐가 추구한 와비차의 미학은 <더 큰 완전성을 위한 불완전성>이다. 완벽하다는 것은 완전한 상태를 보여주기보다 어딘지 모자라게 느껴질 때 더 큰 미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센노 리큐는 젊은 시절 한창 다도를 배울 때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꽃병의 양 손잡이 중 한쪽을 깨뜨려 대칭의 균형을 파괴함으로써 와비의 미를 구현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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