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가끔씩은 한국이 좋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한국이 너무나 싫어 다른 나라로 날아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을 정말 좋아 하고 싶은 데 좋아할 수 없는 부분이 아직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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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는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가로막힌 물이 제 갈 길을 찾아 우회하듯이, 분노의 흐름도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것을 피해 사소한 곳으로 흐를 수 밖에,  학생들을 탓해서 무엇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맞고 처연히 서 있는 그들의 비루한 모습이 또한 우리의 모습인 것을. .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국가에 바치던 공적 충성의 의무가 한구고가 일본에서는 고스란히 회사에 대한 사적 충성으로 옮겨졌다. 똑같은 업종에서 똑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이렇게 길들여진 일본이나 한국의 근로자들은 그와 다르게 길들여진 서구의 근로자들과는 구별되는 습속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일본과 한국에만 존재하는 회사인이라는 개념은 아마도 이런 바탕 위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여가에 속하는 활동이다.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에 나는 협업의 집단적 시간표에서 벗어나 나 자신만의 사적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의 기계적 속도가 여가의 영토까지 정복했다. 여가 시간마저 노동의 집단적 시간표에 따라 조직된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가 삶의 위해 일하는 문화가 아니라 일을 위해 사는 문화임을 의미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래주의란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 전통에 대한 과격한 거부와 기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모토로한 미래주의 운동이 등장한 곳은 주로 러시아와 이탈리아처럼 근대화의 흐름에 뒤쳐졌던 나라들이었다. 한국인이 가진 그 미래주의적 면모 역시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형성된 것일 게다.

 

사이보그란 cybernetic에 organism을 결합시켜 만든 단어로, 생명과 기계의 결합을 뜻한다고 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복제의 발전에는 단계가 있다.

1) 복제는 실재의 반영이다.

2) 복제는 실재를 변질시킨다.

3) 복제는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

4) 복제는 실재와 관계를 갖지 않는다.

5) 복제는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다. 한마디로 복제는 처음엔 원본을 베끼다가 점차 독립된 삶을 살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원본을 사라지게 하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원본을 대신하는 복제, 원본 없는 복제,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를 흔히 시뮬라크르라 부른다.

 

경제적 여유와 함께 찾아온 단체여행의 문화는 아우라의 파괴를 외국으로 연장한다. 보리스 그로이스의 지적대로 기술복제시대에는 여행도 대량으로 복제된 상품이 된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똑같은 코스, 늘 똑같은 얘기, 늘 똑같은 숙소, 늘 똑같은 음식을 거친다.

이는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라 전 세계에 공통된 현상이다. 기술복제시대에 내가 다녀온 장소란 동시에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다녀온 장소다. 이로써 장소의 체험이 가진 고유성은 파괴된다. 얼마 전만 해도 해외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의 관광객들은 어딘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어렵게 찾아와서는 사진만 찍고는 서둘러 다른 데로 가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being)는 체험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진으로 남기는, 언젠가 거기에 있었다. (having been)는 사실의 증거. 그 사진들은 앨범이나 CD, 혹은 하드디스크에 담겨 아우라와 반대되는 체험, 즉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어떤 가까운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체험을 매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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