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여행의 공통점은, 두 가지 모두 자신이 만들어 낸 착각과 환상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랑은 이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착각이고, 여행도 이 장소가 다른 장소와 다르다는 착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착각에 기반해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만든다. 착각 속에 빠져 있을 때는 꿈만 같지만, 착각에서 빠져 나올때는 더 얿이 비참해진다.
지속적으로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이번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죽은 여행이다.-154쪽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키가 작고 왜소해 보이는 체격의 쿠바인에게 플랭카드를 옆에서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촬영을 한 후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는 단연코 안 받겠다고 했다.
잠시 후 달러숍에서 물건을 사는데 그가 들어왔다. 손에 든 너덜거리는 종이에 뭔가 써 있었다. 그의 주소였다. '또 내게 뭔가를 팔겠다는 이야기거나, 자기 집에서 자란 이야기겠군' 이렇게 생각하며 찌푸린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가 내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사진을 보내 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173쪽
나는 어딘가 새로운 곳을 하루만 돌아다녀도 꼭 바보 같은 일을 겪는다. 하물며 한달을 쿠바 같은 신비의 세계에서 돌아다니면 나 자신이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된다. 그리고 허허허!하고 웃는다. '허허...이런 바보가 있나...허허...'하고 나 자신을 비웃다 보면 꽤 재미있다. 하지만 자아가 며칠 전 자아를 비웃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해진다. 그럴 때 훌쩍 훌쩍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신다. 침대에 누워서 '나란 사람이 늘 그렇지 뭐'라고 체념하다가 이내 잠이 든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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