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 하루키가 말하는 '내가 사랑한 음악'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9월
구판절판


정말이지 사람의 흥망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월턴은 새로운 스타일을 내세우며 상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았으니만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대신 스타일이라는 덫에 걸리는 일 없이, 또한 안이한 습관에 길들여지는 일 없이, 자기 페이스로 성실하게 자신의 음악에 깊이를 더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음악의 품이 깊다고나 할까, 통풍이 잘 되어 언제 어디서든 신선한 공기가 스며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긴 시간 들어도 그다지 피곤한 줄 모른다. (시더 월턴 편)-31쪽

클래식 음악을 듣는 기쁨의 하나는 자기 나름대로의 몇 곡의 명곡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몇 명의 명연주가를 가지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의 평가와는 합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신만의 서랍장'을 가지는 것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음악 세계는 독자적으로 펼쳐져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중략)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다른 누구의 체험도 아니다. 나의 체험인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개인적인 체험은 나름대로 귀중하고 따뜻한 기억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우리는 결국 피와 살이 있는 개인적인 기억을 연료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만일 기억의 따스함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우리네 인생은 아마 견디기 힘들 만큼 차디찬 것이 되었을 것이다. (슈베르트 편)-88쪽

10대라는 이른 단계에서 이미 (헤로인)중독 상태였고, 그것은 말하자면 그 중독과 더불어 개인으로서의, 음악가로서의 자아가 형성된 것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그의 자아의 일부이기조차 했다. 그와 같은 이유로 그의 속에는 자신의 벌거벗은 감정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체질이 이미 형성되었던 것이고, 무리하게 맨 정신으로 있으려 하면, 그러니까 살아 있는 자신의 감정과 직면하려 하면-격렬한 우울증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우울증은 그를 폭력적인, 혹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 몰아세웠다. 그렇게 해서 스탠 게츠는 중증의 중독과 우울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스탠 게츠 편)-108쪽

그가 제리 롤 모톤의 고전에 도전한 《스탠더드 타임 vol.6 Mr. 제리 롤》을 들어보았으면 한다. 이 앨범이야 말로 윈턴 마샬리스의 '공부' 증후군의 좋은 예다.
클래식의 영역이라면 모를까, 재즈라는 틀 속에 그림 그리듯이 이러한 '원전의 재정리 작업'을 득의양양하게 전개해 놓으면 듣는 이로서는 다소 염증이 나, '마음이야 알겠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말라고, 창피하지도 않냐?'하는 지겨운 기분이 들고 만다.
재즈라는 것은 그런 이치로 가득 찬 연구주의의 음악이 아니잖은가, 더 잡박하고 생생한 것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윈턴 마샬리스 편)-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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