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가 위대한 것은 몸소 행했다는 것일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며 사랑을 외치며 살아가는가? 간디의 이야기는 이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역효과만 날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라면...이 간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간디는 외면적으로는 정치인이었으나 내면적으로는 종교의 사람이었다. 간디의 일생의 목표가 하나님을 대면하듯이 참에 사는 것이었으니 종교로 인해 모든 것을 판단 결정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 미련하고 이성적이지 못하고 극단적인 것같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미련할 정도의 참에 대한 열정이 간디를 간디답게 한 것이며 당신이 가신지 55여년 되는 지금까지 온세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이책을 기독교도로써 읽었다. 물론 추천해 준 사람도 기독교도 였으며 이책을 번역하신 함석헌 선생도 기독교도이다. 하지만 간디는 힌두교도일뿐더러 자서전 곳곳에 기독교에 대한 실망의 말들이 많다. 하지만 그 내용들을 보면 간디가 만난 기독교도들보다 간디가 더욱 기독교적이기에 실망한 듯하다. 자서전 곳곳에 나오는 기독교적인 마인드. 맹세(약속)의 절대성. 미련한 도. 죄의식으로부터의 구원 등등..각 종교간의 일치하는 부분도 많을테니 그럴테지..이 책은 말그대로 자서전이다. 간디의 탄생으로부터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의 이야기. 하지만 다른 자서전과의 다른 점은 이 책의 부제에 설명되었듯이 “진리 실험이야기”라는 것이다. 논리적 감정적이 아니라 모든 의심나는 것들에 대한 몸으로써의 실험이야기. 경험이 가장 큰 배움이라는 것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더욱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간디의 일생을 걸고 실험한 내용이기에 더욱 소중한 가르침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거론하지만 대부분 사상의 변화를, 환경의 변화에 따른 사상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간디 스스로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 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강함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나를 반대하더라도 나는 나서련다” 외면적으로는 스펙터클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참에대한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찾으려는 사고와 고민들이 매우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물론 그 사고와 그 실험에 독자인 내가 끌려 들어갔을 때 이야기지만. 그 고민에 끌려 들어가지 못한다면 이 두꺼운 책은 그저 시간낭비만 될 수도 있다. (몇번 맞아 죽을뻔도 하고 자살을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지면에서는 잠시 지나갈 뿐 크게 다루지 않음.그만큼 간디에게는 자신의 내면 성찰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 이 책이 그저 한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임에도 읽기에 어려웠던 것은 부담스러울 정도의 두께, 너무 많은 사람과의 의미있는 만남. 그 사람들 이름의 어려움. 너무 많이 돌아다님, 단어 개념 이해의 어려움, 인도의 사상의 근간이 없음. 간디의 실험 및 사상에 대한 사고를 요함.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기독교적 단어를 힌두교에 접목시켜 사용함 등의 이유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모두 헤쳐나가며(피해가라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면 젊은 시절 너무도 크나큰 스승을 얻는 것이리라. 이 책이 초간 된것은 1976년. 우리나라나 인도나 힘겨웁게 살때다. 함석헌 선생은 지금 그때에 이땅의 씨알들이 간디를 배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2003년. 우리나라는 잘살고 인도는 발전의 기미가 있다하지만 여전하다. 그런데 간디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한국은 살얼음을 걷는 듯하다. 사회적으로 부패 척결을 위해, 사회전반의 도덕적 교육을 위해 힘쓰지만 크나큰 희생을 치루지 않는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인도는 그 근간은 부패하지 않았다(적어도 우리보다는). 그래서 인도를 잠재력의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15여년 전에 작고하신 함석헌 선생이 지금 계시다면 오늘도 외치실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기술을 배우기 전에 먼저 간디를 배워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