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동물기 1 시튼 동물기 1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 논장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사는 곳은 변두리 도시다. 서울에서 살다 이사왔을 때 저녁이 되면 너무나 깜깜해져서 깜짝 놀랐었다. 집들에는 모두 마당이 있고 거기에는 많은 나무가 있었다. 마치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아침이 되면 새가 고요히 운다. 호잇 호잇 하고 우는 새도 있고 비 비쫑 비 비쫑비쫑 하고 우는 새도 있다. 공기엔 향기가 감돈다.

서울에 살 땐 이런 걸 느끼지 못했다. 서울에서 볼 수 있었던 건 비둘기와 사람들이 안고 다니는 개, 그리고 고양이가 기껏이었다. 비둘기는 우리의 친구라기보다 귀찮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싸대는 똥에 집은 지저분해지고 창문도 열어놓을 수가 없었다. 개와 고양이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도 삶이란 게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너무나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동물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웃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일 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동물들도 사람만큼 열심히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도 도시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경쟁적으로 살고 있다. 그들도 진화한다. 그들은 더이상 자연의 존재가 아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 사람이 도시에서 자연과 멀어지고 있듯이 도시의 동물들도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시튼 동물기에 나오는 동물들은 아직은 자연의 존재인 채로 사람들과 만나는 경계지점에 서있다. 그들은 서서히 자신의 본능을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 발달시켜 가고 있었다. 늑대왕 로보는 더욱 더 지혜로워지고  잔혹해져야 했다. 산토끼 리틀워호스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까마귀 실버스팟은 사람들을 예의주시해야 했다. 그리고 속임수를 쓸 줄 알아야 했다. 빙고는 자신의 야성을 죽이고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그렇게 했을 때 동물들은 불행해졌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종만이 지배자가 되었다. 동물들은 패배감을 간직한 채 죽어가야 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영악했고 잔혹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진화해온 것일까? 

고대에 사람과 동물은 형제였다. 사람과 동물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랑을 나누었다. 심지어 동물을 신으로까지 생각했다. 자연 속에서 그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람은 동물을  자신보다 낮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사람이 자연에서 떨어져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동물들에겐 비극과 굴욕의 역사가 시작되는 때였다. 시튼은 동물들에게도 감정과 꿈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튼이 이를 깨달았을 때는 자신이 놓았던 덫에 자기 자신이 걸리고 나서였다. 덫에 걸린 늑대가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을 느끼겠지 하는 상상력으로부터 시튼은 동물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눈으로 동물을 바라보았기에 시튼은 진정한 동물의 삶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이 책을 읽는 우리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동물들의 삶이 그렇게도 비극적이기에 진한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극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니까. 절망 속에서도 삶을 지키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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