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의 등에서
조지 맥도널드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북풍의 등에서>라는 제목은 늘 내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동문학 이론서인 <어린이문학의 즐거움>을 읽다가 지나치는 것처럼 제목만 보았을 뿐인 그 책은 웬지 묵직한 존재감을 가지고 내 안으로 들어와버렸던 것이다. 북풍의 등에 업혀 하늘을 날아가는 아이의 그림은 뭔지 모를 아련함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때는 책이 번역되어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단지 상상 속에서만 그 모습을 그려보고 그리워할 따름이었다. 그러다 서서히 잊혀져 갔고...

얼마 전에 동무들과 얘기를 하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걸 알게 되었다. 작가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죠지 맥도널드란 사람이었다. 아마도 켈트계일 것이다. 이름에 맥이 들어가는 걸 보니. 그건 누구누구의 자식이란 뜻으로 붙는 이름이라고 하던데. 그러니까 도널드의 자손이란 뜻이다. 도널드는 뭘 하던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켈트족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영국엔 특별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많다. <북풍의 등에서>도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북풍의 등에서>라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헤로도토스가 한 몫을 한 듯 하다. 그리스에는 북풍의 등에 있는 나라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었던 듯 한데 그곳은 지상낙원과도 같은 곳이라 사람들이 너무 지겨운 나머지 물에 빠져 죽는 곳이었다고 한다.

헌데 죠지 맥도널드는 그 곳, 북풍의 등에 있는 나라에 한층 상상력을 불어넣어 무언가 고차원적인 비밀이 존재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니 묘사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곳은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곳이기에. 묘사할 수 없는 것은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 다녀온 사람은 누구나 풍성한 지혜로 무장되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어린 다이아몬드가 그랬다. 이름마저도 특별한 다이아몬드는 착하고 순수하고 순종적인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절망적인 현실 앞에 놓여 있는 작은 촛불과도 같았다. 하지만 북풍은 이 아이에게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었고 북풍의 등에 있는 나라에 다녀오게 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세공되었고 빛이 나게 되었다. 원석과도 같았던 아이가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눈부시게 빛이 나는 아이가 되어 세상을 구원할 지혜를 퍼뜨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아이를 달갑게 여기지만은 않는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내뿜는 빛에 놀라워하며 찬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빛을 덮어버리느라 바쁘다. 왜냐하면 그 빛을 내뿜는 것은 너무나 큰 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 힘을 내기가 어렵다. 그 힘은 내적으로 강한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힘의 근원은 북풍의 등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고 바보로 여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세상의 인식에 굴하지 않고 하늘의 인식을 구한다. 그것이 끝까지 그를 빛나게 하는 점이다.

꽤 두툼한 책이지만 때로는 웃으며 아주 가끔은 눈물 지으며 읽어내릴 수 있는 간만에 만난 좋은 책인 것 같다. 좋은 책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여운을 오래오래 남긴다. 그리고 내가 주장하는 바 좋은 책은 실용적인 지혜를 준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다이아몬드가 사는 마구간에는 여러 가족이 살고 있었다. 바로 옆집에는 술주정뱅이 마부가 살았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온 마부는 마누라를 때리기 시작했다. 갓난아기는 놀라 깨어 울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는 이 소리를 듣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찾아간 게 아니라 조심조심 들어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럴 때 술주정뱅이 마부한테 쓴소리를 잔뜩 늘어놓을 것이다. 똑바로 살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마누라한테 이런저런 교훈이 실려있는 책을 집어던지며 이런 책이나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다이아몬드는 그러지 않았다. 곧바로 울고 있는 아기한테로 다가가 아기를 안아올리고 얼르기 시작했다.

곧 아기의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들었다. 다이아몬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울고 있던 마누라도 마음이 안정되고 술에 취해 졸고 있던 마부도 무언가 모를 슬픔과 후회의 감정에 젖어들었다. 집안은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졌다. 처음 상황보다 좋아졌지 나빠지지 않았다. 다이아몬드에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지혜와 행동력이 있었다. 모든 순간에 그럴 수 있었다.

난 이런 게 생활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죽도록 배우려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그 상황을 쥐어틀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한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북풍이 내 방에도 창을 내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 북풍의 등에 업혀 바람과 함께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머나먼 그 곳 북풍의 등에 있는 나라에 가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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