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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어린이표 - 웅진 푸른교실 1, 100쇄 기념 양장본 ㅣ 웅진 푸른교실 1
황선미 글, 권사우 그림 / 웅진주니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반 아이 모두에게 그런 걸 시켰답니다. ‘나의 장점 50가지’ 써오기. 아이들 모두 소리를 질렀지요. 장점 한 두 가지도 아니고, 아니, 열 가지만 되어도 그럭저럭 쓸만할 텐데…뭐, 자기 장점 한두 가지 쓰는 일은 수련회나 그런 곳에 가면 종종 있었으니까요.그런데… 무려 50가지라니요!! 모두 불평을 해댔지만, 선생님의 ‘그러면 100가지 써올래?’하는 말씀에 다들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들 머리를 짜내 자기 장점을 생각하기 시작했죠.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자율학습 시간에 연습장을 꺼내놓고 혼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주어진 시간이 모두 흘렀습니다.
자기 장점 50가지.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저에게 그렇게 많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에이,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장점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10개 정도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의 장점이 내게 있나 하는 생각만 들뿐 진척이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닦달하고, 머리도 쥐어짜며 며칠을 보냈죠.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감날 아침, 어떻게 됐을까요?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 가득 아이들의 과제물이 붙었습니다. 50여명의 반 아이들 모두 자기 장점 50가지를 써오는데 성공한거죠. 50명이 아이들이 써온, 2500가지의 장점들이 교실 가득 빛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요? 물론, 저도 50가지의 장점을 모두 써냈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 모두에게 칭찬 받아 마땅한 것만이 장점이라 생각했을 때는 그 작업이 너무 어려웠습니다.하지만… 생각해보니 장점이라는 것이 꼭 대단한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제가 쓴 장점에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아무 데서나, 언제든지, 자고 싶을 때는 잠을 잘 수 있다.’ ‘목소리가 커서 내 자리에 앉아 옆 반 친구도 부를 수 있다.’‘새벽 3시에 고민 없이 라면 먹고, 그 다음날 부은 얼굴로 뻔뻔스럽게 다닐 수 있다.’등과 같이 장점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뭐, 이런 것들이 장점이 아니라는 법도 없죠.장점이라고 생각하면, 도둑질이나 강도질 빼고는 다 장점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내가 어떤 것을 갖고 있느냐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그렇게 잘 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목소리가 크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편히 잘 잘 수 있는 게 복임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큰 목소리를 화내는데 쓰지 않고, 누군가를 응원하는데 쓴다면 분명 커다란 장점임을 알고 있으니까요.
<나쁜어린이표>를 읽으며 전 내내 그 때, 그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나쁜어린이표를 연거푸 받다 보면 건우처럼 평범한 아이도 문제 투성이 나쁜어린이가 되어버리겠죠. 하지만 반에서 나쁜어린이표를 가장 많이 받는 아이도 장점 50가지를 찾다보면 꽤 괜찮은 아이처럼 느껴질 것입니다.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찾은 장점을, 세상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진짜 빛나는 장점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겠죠.생각할수록 그때 그 선생님이 참 고맙네요*^^*(아! 하지만 건우네 반 선생님이 특별히 나쁜 선생님이라고는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림을 보니, 그 선생님 역시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병아리 선생님으로 보이더군요. 제 친구들 중에도 이제 막 선생님이 된 친구들이 있죠. 열정은 있지만 그 열정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힘겨워하기도 하고… 그 선생님 역시 그런 과정이었겠죠? 그래서 전 그 선생님 역시 안쓰러웠어요. 책을 덮으며 내일은 선생님도 건우도 한 뼘은 자라있을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