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서천석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평점 :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당시 메이와 가부 시리즈의 '폭풍우 치는 밤에'와 '까마귀 소년', '네가 아주 어렸을 때', '거짓말 같은 이야기', '여섯 사람', '바람이 멈출 때', '괴물들이 사는 나라' 등 한 달에 한 번은 꼭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그림책을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작년을 계기로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림이 있고 글이 적기 때문에 유치'하고 '단순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그림책'이라는 생각을 접게 될만큼 많은 그림책이 있었고 어른이 보기에도 마음이 가고, 가슴이 절절한 그림책들도 많았다. 또 글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감동도 있었기에 이 후 그림책에 빠져들면서 그림책을 하나둘씩 모으고 저학년 학생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도 간간히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많다보니 주요 독자는 아이들이 되고, 아이들이 왜 그 그림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진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강아지똥>, <응가하자, 끙끙> 등 아이들의 그림책 중에는 유독 '똥'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 많다. 똥, 방귀, 설사, 트림 등 그 더러운 것들을 그냥 읽기만 하여도 아이들은 너무나 재미있어한다. 똥 이야기만 하면 어른들은 질겁을 하고 눈살을 찌푸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똥은 어른들의 질서를 흐트러뜨릴 좋은 재료가 되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배변은 창조행위라고 한다. 어른들에 비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최고의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들의 그림책의 단골 소재는 '곰'이다. 털이 복슬복슬 달려있고 눈이 까만 곰은 꼭 안아 주고 싶은 포근한 대상이다. 곰은 엄마를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 단군 신화에도 단군의 어머니는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웅녀였고 북미대륙에서도 갈색곰은 엄마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의 그림책에 많이 등장한다. 머리를 가누고, 몸을 뒤집고,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을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를 달래고 격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가 없으면 불안하기에 곰돌이(곰 인형)를 '전이대상'으로 여겨 곰돌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곰이 아이 내면의 길들여 지지 않은 부분, 고집스럽고 폭발하는 힘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은 현실의 힘 없는 자신이 상상의 세계에서 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길 원한다. <난 커다란 털복숭이 곰이다>에서는 커다란 힘을 갖게 되자 제멋대로 말썽을 부리고 싶기도 하고, 그 힘을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쓰고 싶기도 하는데 이게 바로 아이들의 마음이다.
책은 4장의 구성으로 <1장. 연령별 발달 과제와 그림책 읽기>, <2장.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징>, <3장. 심리적 어려움에 처한 아이를 위해>, <4장. 부모가 권하는 그림책, 아이가 원하는 그림책>으로 나뉜다. 그 중 위에 내가 말했던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인 '똥'과 '곰'에 관한 이야기는 2장에 나온다. 특히 3장을 유심히 봤는데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의 심리는 아이가 한글을 빨리 깨우치길 바라는 것보다는 아이가 심리적, 심성적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기에 심리적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어떤 책이 적당할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부모가 백 번 실패를 두려워 말래도 아이 스스로 실패가 두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게 더 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그에 적절한 혹은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그림책을 원한다. 왜 화가 났는지, 왜 부끄러워하는지, 왜 불안을 느끼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무조건 하지 말라는 부모의 비논리적인 말을 아이들은 단지 힘의 논리에 의해 따를 뿐 자기 안의 하나의 감정인 분노, 부끄러움, 불안을 더 깊게 숨기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꼭 이 부분을 많은 부모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어릴적 엄마의 한마디, "너희 오빠는 1학년때부터 줄글로 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라는 그 말 한마디로 나는 2학년 때부터 그림책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작년에 그림책을 다시 접하면서, 그리고 하나둘씩 모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동화책을 봤을 때 드는 생각이나 느낌이 연령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아이가 서로 공유할만한 어떤 것을 원한다면, 서로 이야기와 감정을 더 나눌 수 있을만한 어떤 것을 원한다면, 내 아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어떤 것을 원한다면 이 책을 읽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