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김성재 지음, 김성민 그림 / 현암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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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21 수요인문강좌 리뷰 '김민웅의 동화속 비밀창고(3)'>

심청이의 하루는 아버지가 전부였다. 눈먼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심청이의 존재 이유였고, 절대적 명제였다. 그런 심청의 일상에 갑작스럽게 사건이 발생하는데, 눈을 뜰 수 있다는 화주승의 이야기에 아버지가 덜컥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바치기로 약조한 것이다. 삼백 석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묘안이 떠오르진 않지만 확실한 건 심청이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돈을 벌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자비 없는 화주승에 낚여 무능한 사대부 아버지는 이미 물을 엎질렀고, 심청은 무슨 수를 써서든 해결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주변이 슬슬 심청을 옭아매기 시작한다. 이제, 집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심청은 발품을 팔며 노동 강도를 높인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고, 헌신하셨다.

어느 날, 고뇌하던 심청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삼백 석을 마련함과 동시에 열녀가 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순간 말이다. 사람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상인들이 고맙게도 심청을 삼백 석에 산다. 이제 되었다. 삼백 석을 구했으니, 심청은 미련 없이 배에서 뛰어 내린다. 그리고 심청의 죽음과 동시에 선원들은 평온한 뱃길을 기원하며 잔치를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청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일생을 아버지를 위해 헌신했으며 마지막에도 아버지를 위해 과감히 죽음을 택한 심청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이내, 고을 원님도 눈물을 훔치며 주상께 이야기를 전해 드린 후 ‘열녀문’을 세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녀문을 둘러싸고 고을의 자랑거리를 칭송하며, 기뻐한다. 정작 주인공은 없지만 말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심청의 이야기를 통해 ‘효’, 더 나아가 ‘자기희생적 효’를 강요한다. 심청과 심청의 어머니가 겪었을 말로 형언키 어려운 고통의 시간은 지운 채, ‘효’라는 유교적 가치만을 전면에 앞세운다. 사대부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들은 응당 그래야만 하는 존재들로 그려지며, 그녀들의 정체성은 철저히 거세된다. 심청의 어머니가 ‘곽 씨 부인’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곽 씨 부인이 심봉사의 ‘아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곽 씨’, ‘심청’을 떠나 ‘여성’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억압을 받는다. 이것이 당시 조선 사대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신하는 임금을 섬겨야 하고,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존재는 똑같은 권위를 지니며, 가부장은 집안을 먼저 잘 다스린 후, 세상을 다스려야 하고, 여성에게는 칠거지악을 내린다. 특히 시집을 간 이후로는 말하지 말고,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 것을 명한다. 아이를 못 가지는 것도 칠거지악 중 하나라 했던가. 조선의 유교는 성적 억압을 통해 “(성적 억압이란) 온갖 불행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빌헬름 라이히>을 수행했던 것이다. 심청이는 권위주의의 체제의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죽었던가? 아니다. 그녀는 살아 돌아와 왕비가 되어 사대부인 심봉사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 “제가 살아 돌아 왔으니, 눈을 뜨고 보세요!” 지배층이 무참히 짓밟았지만 심청은 다시 돌아와 그들에게 눈을 뜨고 똑똑히 직시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더 이상 효를 ‘강요’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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