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람들이 당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마치 베토벤의 작품 백서른여덟 곡을 연이어 연주하되 다만 각 악곡의 첫 여덟 소절만 연주하여 소개하는 그런 대연주회와 흡사하다. 만약 십 년이 지나서 또 같은 연주회를 연다면, 아마 각 곡의 첫번째 음정 하나씩만을, 즉 연주회 전체에 걸쳐 백서른여덟 개의 음정들을 마치 하나의 멜로디처럼 연주할 것이다. 그러나이십 년이 지나서는 베토벤의 음악 전체가 매우 길고 날카로운 하나의 음정으로 요약될 것인데 아마 이는 귀가 먹던 첫날에 그가 들었던, 매우 높고 끝없이 길기만 하던 바로 그 음과 흡사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스 추종자들이 곧잘 틀리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역사가 연출하는 상황들이 단지 최초의 몇 분만 조명될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어떤 사건도 진행되는 전 기간 동안 뉴스거리가 되는 게 아니며 단지 시작의 매우 짧은 한 시점만 뉴스거리일 뿐이다. 수백만 관객이 열심히 지켜본 소말리아의 그 죽어 가던 아이들이 이제는 죽지 않는가? 그들은 어찌 되었는가? 살이 쪘는가 야위었는가? 소말리아가 아직 존재하기는 하는가? 과연 그런 나라가 언제 존재하기는 했던가? 다만 어떤 신기루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상황 하나를 상기해 보자. 웬 사내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문득 그가 뭔가를 회상하고자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자신이 방금 겪은 어떤 끔찍한 사고를 잊어버리고자 하는 자는, 시간상 아직도 자기와 너무나 가까운, 자신의 현재 위치로부터 어서 빨리 멀어지고 싶다는 듯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한다.

실존 수학에서 이 체험은 두 기본 방정식 형태로 나타난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적 가치는 우리가 도덕적 신념을 통해 주어진 종교를 해석할 때 발생합니다.
(중략)
핵심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는 도덕이 전혀 없다! 어쨌든 도덕 그 자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의 도덕은 선생님이 이 구도를 해석하기 위해 어느 세계관을 사용하는가에 의존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윈은 ‘최강자의 생존‘이 아니라 최적자의 생존‘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다윈은 강한 동물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살아남는 동물은 주어진 생태적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