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문명은 인간 안에 단지 감각의 다양성을 발달시킬 뿐이다. 그리고 절대 그 이상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들의 발달에 의해서, 인간은 궁극적으로 피를 보는 것에서 쾌락을 찾는 데까지 도달한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이미 인간에게 일어났다. 당신은 가장 세련되게 피를 흘리게 만든 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가장 문명화된 신사들이었다는 것을 주목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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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정확하게 지시된 길을 가는 것은 마치 그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인 것처럼 여겨져 도박을 하며 고집스럽게 그들의 길을 완전한 어둠 속에서 찾아야만 했다. 이런 불합리하고 위험한 길을 개척하는 것과 같은 본보기들을 입증하는 수백만의 사실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고집과 변덕이 실제로 그들에게 어떤이익보다도 더 즐거운 일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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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당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마치 베토벤의 작품 백서른여덟 곡을 연이어 연주하되 다만 각 악곡의 첫 여덟 소절만 연주하여 소개하는 그런 대연주회와 흡사하다. 만약 십 년이 지나서 또 같은 연주회를 연다면, 아마 각 곡의 첫번째 음정 하나씩만을, 즉 연주회 전체에 걸쳐 백서른여덟 개의 음정들을 마치 하나의 멜로디처럼 연주할 것이다. 그러나이십 년이 지나서는 베토벤의 음악 전체가 매우 길고 날카로운 하나의 음정으로 요약될 것인데 아마 이는 귀가 먹던 첫날에 그가 들었던, 매우 높고 끝없이 길기만 하던 바로 그 음과 흡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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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추종자들이 곧잘 틀리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역사가 연출하는 상황들이 단지 최초의 몇 분만 조명될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어떤 사건도 진행되는 전 기간 동안 뉴스거리가 되는 게 아니며 단지 시작의 매우 짧은 한 시점만 뉴스거리일 뿐이다. 수백만 관객이 열심히 지켜본 소말리아의 그 죽어 가던 아이들이 이제는 죽지 않는가? 그들은 어찌 되었는가? 살이 쪘는가 야위었는가? 소말리아가 아직 존재하기는 하는가? 과연 그런 나라가 언제 존재하기는 했던가? 다만 어떤 신기루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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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상황 하나를 상기해 보자. 웬 사내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문득 그가 뭔가를 회상하고자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자신이 방금 겪은 어떤 끔찍한 사고를 잊어버리고자 하는 자는, 시간상 아직도 자기와 너무나 가까운, 자신의 현재 위치로부터 어서 빨리 멀어지고 싶다는 듯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한다.

실존 수학에서 이 체험은 두 기본 방정식 형태로 나타난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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