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귀여워‘는 ‘콤플렉스’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주체를 향해 하는 말이지, 상대의 신체적 특징을 콤플렉스로 만든 사회를 향해 하는 말이 아니다. 괴로워하는 주체에게 한술 더 떠 자기 변혁을 요구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당치 않은 소리다. - P128

만약 내가 ‘아름답게‘ 변하거나 지금의 자신을 ‘아름답다‘고 재인식할 수 있다면 나한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혁명이 아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사회다. 다시 한번 써두겠다. 변해야 하는 것은 사회다. - P129

요컨대 내가 상상하는 것은 자신의 외모를 싫어하는 채로도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 이 세상은 외모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며, 외모가 인간의 생존 문제에 너무 깊게 침투해 있다. 해체해야 할 것은 이 부분이다. 토마토가 싫다는 이유로 죽을 만큼 괴로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자신의 외모가 싫다는 이유로 죽을 만큼 괴로워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외모의 사회적 의의가 한없이 가벼워질 때야말로 우리 굳이 우리라고말하련다—의 호흡은 비로소 편해질 게 아닌가! - P132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행복을 추구하는 자세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와 같은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세상이 너무 지나치게 가치의 중점을행복에 두고 있다. 무슨 일만 있으면 금세 행복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복한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이 문답에 대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물론 나는 델마와 루이스도, 후미코도 절대로 부정하고싶지 않다. 거기에 있었던 ‘생‘을 받아들이고, 약속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싶다. 하지만 설령 ‘참된 자신‘을 확신할 수 있는순간이 인생에서 찾아오지 않거나 또는 그것을 추구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해도, 그 생에 대해서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다. 극적인 일도 없고, 툭하면 헤매고, 나약하고, 주저하고, 종종 떳떳하지 못한 기분과 고독에 짓눌리는 생존을, ‘생’과 동등하게 존귀한 혁명 전야의 신체로서 인정하고 싶다. 아마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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