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파 톨드 미 Papa told me 24
하루노 나나에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PAPA TOLD ME는 제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케이스에 들어가는 만화입니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고, 재미있게 보다가 어느 시점부터 '뭔가 이상하다'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다가 결국 더 이상 구매 목록에 등록되지 않은 작품이니까요. 처음엔 단지 뭔가 마음에 걸리는 정도였지만, 점점 도저히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던 거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우가 참 드물었기 때문에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다른 사람 혹은 사회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걸로 보입니다. 오직 등장하는 것은 아주 친밀한 관계, 즉 부녀나 부부 정도의 관계에서 생기는 교류 뿐이죠. 그리고 그런 중에 작품에서 작가는 뚜렸하게 적과 동지를 구분합니다. 그 중 적으로 분류되는 종류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참견으로(혹은 관심으로) 귀찮게 하는 사람들'과 '쓸데없이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입니다.
치세는 치세와 아빠를 걱정하는(혹은 간섭하는) 친척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비난하죠. 쿨하고 우아하게. '그냥 내버려둬, 관심꺼. 당신들에게 우리가 맞출 필요는 없잖아.'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철저한 개인주의의 극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제가 이 작품을 멀리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개인주의가 좀 더 널리 퍼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거니와 저 자신도 개인주의자이니까요. 제가 문제삼는 건 이 작품을 지탱하는 축이 개인주의라고 착각하기 쉬운 독선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는 겁니다. 치세를 통해 보이는 작가는 세상에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또다른 나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가장 기본은 바로 '나와 다른 또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일텐데 말입니다.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사람도, 세상을 자신과 다르게 보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작가는 사회운동이나 세상을 삐뚤어지게(작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대적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묘사도 악의적이며 치세의 입장에서 비웃고 비꼬고 있지요. '잘난척'이나 하는 '위선자들'로 말입니다. 물론 이런 평가가 맞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긴 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일탈해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될는지는...
이 작품에서 치세와 그에 같은 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변만의 폐쇄된 공간에서 철저한 외부와의 단절 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자신의 문제만을 생각하죠. 거기에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못합니다.
글쎄요, 작가가 그리는 이상적인 삶이란게 뭘까요.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현실을 그것으로 한정시키고 살면서, 잠깐 생각나면 세상을 동정하듯 한 번 바라보고 사는 것? 그리고 늙은 후에는 여유롭게 정원에 앉아서 세상에 조용히 순응해서 살지 못했던 멍청이들을 비웃으며 차 한잔 마시는 것?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작품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다가 남은 건 입안에 가득한 씁쓸한 맛입니다. 그리고 도무지 작가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결론, 이게 이 작품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