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번째 날 밤이었다.
"9시까지 분당 서현역으로 와서 전화해라"
흠...그 말만 달랑 하고 끊으시는, 할아버지...
그렇게 아침 일찍 무슨 일일까하고 궁금해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8시 조금 넘긴 시간에 기숙사에서 출발하여
9시 조금 넘긴 때에 분당에 도착하였다.
할아버지는 손수 차를 운전하고 나오셨고, 그 옆에는 할머니가 타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손녀 개학 하기 전에 한 번 놀러가자고 하셨다.
붕붕~ 자동차 타고 '고향의 길'을 지나, 제부도 앞바다까지 갔다.
아침을 안 먹은 나는 그 곳 횟집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한 번 왔다 갔다며, 주인 아줌마에게 겁나게 친한 척을 하신 할머니 덕택에 5000원에
2인분씩이나 먹게 되었다. 정말 대접도 크고, 조개도 많고 푸짐했다.
원래 두 분 다 워낙 소식을 하시는지라,
나 혼자 그 2인분 다 먹느라 너무 힘들었다; 맛은 있었지만^^
먹는 도중... 창가를 바라보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봐라~.바다 얼마나 넓냐~?끝도 없는 거 같지?그런데 그 게 아니다. 이 지도를 봐라. 이 지도를 보면 그 넓은 바다가 숫자(축척)과 그림으로 표시해 놓아서 얼마나 작니~?? 인생이란 그런 거란다. 가까이에서 보면 큰~~ 일이지만 멀리서 보면 작은 일이란다."
정말 그런 것 같다...가슴 뭉클한 말이었다.
배불리 먹은 후,물이 빠진 바다를 갯벌 사이로 난 도로 같은 길을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걸었다. 할머니는 곳곳의 굴을 따 먹느라고 정신 없으셨고; 할아버지는 갯벌을 부지런히 기어다니는 게를 보며, 생명의 신비에 탄성을 지르셨고, 서산 간척지를 만들었던 무지몽매한 박정희와 정주영을 맹렬히 비난하셨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살아있는 갯벌을 처음 보고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돌에 붙어있는 굴, 소라들 다 빈껍데기로 죽어있는 것 같지? 봐라. 안 그래. 내려치니까 이렇게 물이 튀고, 살아있는 속살이 보이잖니~? 지금 물이 다 빠졌는데도 이렇게 살아 있는 건 다음에 물이 들어올 때까지 각자 생물들이 자기 살만큼 물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살다가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자생력이 있다면, 자기 살만큼 물을 갖고 있다면 다 이겨낼 수 있는 거란다."
또 한 번 감동적인 말씀이었다.
바다 구경을 다 끝내고 돌아와 산낙지를 먹고, 드라이브 좀 하다가 마침 철이 된 대하를 소금에 구워서 먹고, 시골 장터에서 반찬거리와 포도 한 꾸러미를 사 갖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할아버지와 지하철역에서 헤어져 할아버지는 분당 집으로, 나는 기숙사를 향했다.
우리 할아버지~
누구든지 나이 먹는다고 저렇게 멋있진 않으리라~
어릴 때 밤마다 산책 데리고 나가서 들어올 때는 팥빙수나 아이스크림 사 주시고,
어릴 때는 무등 태우고 등산을, 지금은 대학간 손녀 딸 바다 구경을 시켜주시는 우리 할아버지~.
따뜻하고 운치 있으시고, 게다가 철학자같은 멋진 말씀까지~!
나는 우리 할아버지같은 멋진 할아버지가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