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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생각하다 -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이 고작 교사인 이들을 향한 열정적인 옹호
테일러 말리 지음, 정여진 옮김 / 니들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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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생각하다
요즘 교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참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많이 변질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UCC가 한창 이슈가 되었을 무렵,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 쉴새없이 인터넷상에 올라왔다. 그것은 수업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충격을 받은 동영상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들로 부터 등돌린 틈을 타서 율동같은 몸짓을 하면서 찍은 영상이었다. 어쩌다 이리 변해버린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요즘은 체벌도 못한다. 체벌하려고 하면 동영상을 찍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발생해버리는 세상이다.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부모다. 예전같으면 선생님은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부모들은 교사를 철저히 신뢰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뭔가 잘못되면 그것은 모두 교사탓으로 돌리면서 잘하면 자신의 아이가 잘난 탓이다. 그렇다고해서 학생과 부모만의 잘못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요즘 나태한 교사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교사라는 직업은 우대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업을 엉망으로 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교육에 더 열올리는 것은 아닐까?- 학생을 진심으로 차별하기도 한다. 돈이나 선물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사립학교에서는 말이다. 내가 너무 안 좋은 면들만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 실제로 뉴스는 안 좋은 일들만 다루기 일쑤니 어쩔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이 교직에 있으면서 행한 일들을 토대로 교사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이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럼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이유
단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것일까? 물론 성적을 올리기 위함은 눈에 보이는 목표다. 특히 우리나라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않은가. 내신에 수행평가에 이것저것 관리할 것도 많은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당연히 뒤처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교육의 목적은 팽팽한 경쟁 속에서 상위권을 쟁탈하라가 아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이 참 보기 좋은 포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은 문자화된 것들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사회성을 기른다. 성실과 협동, 적응력,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등을 배우며 더 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한다. 이 능력들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교육받음으로써 서서히 익히고 있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다르다.
부모와 교사의 역할, 어떻게 다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아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아이의 잠재력을 객관적으로 알아내고, 평가할 수 있다. - 어느 부모나 자신의 아이가 최고라고 하지 않겠는가? - 성적이 안 좋으면 늘상 하는 말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라는 말. 물론 머리가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그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아이에게 맞는 학습 방식이나 과정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순간
여기서 깨달음은 학생과 교사 각각에게 의미가 있다. 학생에게 깨달음의 순간이 오면 교사는 매우 감격스럽다고 한다. 그것은 월급 외의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예전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가르치면서 그 아이가 알아갈 때 그게 참 뿌듯했었다. 아마 그런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교사에게도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는 착각하면 안 된다는 실수에 대한 깨달음이다. 학생들은 호기심도 많고 창의적이어서 참 신기한 발상을 많이 한다. 그런 만큼 자유 발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발상 속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공부에 대한 창의적인 발상까지! 렇기에 저자의 이야기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논리정연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학생도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참 신기한 일이다. 수업 시간에 자리를 비우다니! 내가 학생일 때는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여자들의 특별한 경우만 제외하고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경우에는 반드시 뒷문 자리 쪽에 앉도록 했다. 그래야 다른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잘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화장실간다는 말도 어찌나 그리 쉽게 하는 건지 깜짝 놀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규칙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는 교실을 빠져나갈 수 없는 규칙이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너무 느슨해진 규칙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참을성과 교권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씁쓸한 느낌이 든다.
가망없는 아이는 없다.
어떤 아이가 얼마나 뒤처져있든, 그 아이의 진로가 얼마나 제한적이든, 결코 그 아이를 포기 할 수 없다.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왔을 때보다 좀 더 미래에 대해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교사의 가장 기본적인임무다.
저자는 이리 말한다. 지금의 교사들은 어떠한가? 내가 너무 안좋게만 생각하는 것일까? 이슈되는 교사들이 전부 안 좋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일까? 참 안타깝다. 분명 아이들이 좋아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교직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잠시 학창시절을 떠올려본다. 참 열심히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억척스러울 정도였으니. 학생들 중에는 그 선생님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 너무 깐깐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선생님을 잘 따랐다. 누구보다 열심히 우리학급 아이들을 위하는 것을 학급임원을 하면서 계속 보게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선생님은 이 뜻을 새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가망없는 아이는 없다.
요즘 교권이 말이 아니다. 부모도 학생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졌다. 그리고 교사들도 그렇게 책임감있게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고쿠센이라는 꽤 오래전에 방영한 일본드라마를 떠올렸다. 말썽쟁이 학생들은 선생님을 믿지 않지만, 선생님은 그 믿음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였다. 지금 우리에게 선생님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교육이 인간에게 있어서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에 대한 부모와 학생의 자세 그리고 학생과 부모를 대하는 선생님의 자세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