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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ㅣ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글을 처음 접한 건 한 대형서점에서 '참담한 빛'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홀린 듯 구매하게 되었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그녀의 모든 출간물을 읽게 되었다. 평소 무거운 주제의 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 있어 백수린 작가의 글은 오랜 장맛비 뒤에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 같은 존재가 되었고 지금껏 그녀의 글들을 반가이 맞이하며 조용히 응원해 왔다. 또다시 우연한 기회로 창비에서 백수린 작가의 신간 에세이 발매를 앞두고 서평단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고 보물이라도 발견한듯한 기분으로 서평단을 신청하였는데 운 좋게 선정되어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창비에서 보낸 책이 도착해 있었고 백수린 작가가 필체가 담긴 책갈피와 편지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라는 에세이 속의 문구가 쓰인 책갈피가 들어있었는데 창비 측과 백수린 작가의 정성이 대단하지 않은가. 편지도 그녀의 정성 어린 글들로 꽉 채어져 있었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선물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은 [나의 작고 환한 방], [산책하는 기분], [멀리, 조금 더 멀리] 3부로 구성된 에세이로 창비 온라인 플랫폼 '스위치'에 연재한 글들과 이번 에세이 배경이 되는 언덕 위의 집과 인연을 맺으면서 틈틈이 썼던 글들의 모음집이다. 그녀의 따뜻한 일상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들을 언제나 그랬듯 설레는 맘으로 첫 장을 넘겨 보았다.
폭이 좁은 골목과 낮은 집들. 검은 개 두 마리가 성곽 길을 따라 사이좋게 뛰어다니고, 폭우가 그치면 성곽 위로 솟은 나무들 사이에서 새들이 부산스럽게 지저귀고,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평상이나 골목의 벤치에 앉아 살아온 날들처럼 길게 늘어진 하오의 볕을 하염없이 쬐는 이 동네를 나는 좋아한다.
서울의 많은 장소들이 그렇듯이 언젠가는 이 동네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세련된 건물들, 생존을 위한 요구와 필요만이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해결되는 공간들로 대체되는 날이 올까? 아마 올 것이다, 불행하게도. 바람이 있다면, 그러 날이 여름의 중앙을 통과하는 민달팽이처럼 천천히 다가오기를. 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 놓는다.
낯선 동네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갖게 되면서 만나는 이웃들의 이야기로 동네의 풍경은 위의 짧은 문구들로 요약될 수 있을지 모른다.
M이모로 인해 알게 된 언덕 위의 동네에서의 익숙지 않은 동네 생활을 다정다감하게 도와준 이웃들,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옆에서 비슷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삶 속에서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정겨운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 것이 아닌 욕망과 거짓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집'에. 그곳을 이정표 삼아 걷는다. 아무리 쫓아내봤자 다시 떼를 지어 찾아오는 불안과 유혹에 눈이 가려져 몇 번이나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지라도. 먼 나라에 살았다는 어떤 왕의 말처럼 인생이 결국엔 헛된 것에 불과할지라도.
집을 재화의 가치로만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와 시선은 뒤로한 채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들, 타인에겐 무용이라 불리는 것들을 사랑하며 간직해 온 자신을 돌아보며 결국 그런 것들로 인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는데, 나의 4년 6개월이라는 긴 일본 유학을 견디게 해주었던 것도 여유가 될 때마다 들리는 라면 가게와 한 장씩 사 모으던 음반. 이런 소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가 서로에게 깃들고, 이렇게 서로를 비춰주는 조그만 빛이 될 수 있게 해준 그 힘이.
말도 통하지 않고 종마저 다른 둘 사이에 사랑의 시간이 쌓여 서로가 서로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기적이 아닐까?
오랜 시간 함께 한 반려견 봉봉과의 만남과 이별, 말도 통하지 않고 종마저 다른 둘이 오랜 시간을 거쳐 쌓인 신뢰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 서로에게 인식되며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살리고 싶어 하는 그녀를 위해 하루라도 더 버티려고 애쓰는 봉봉의 마음이 전해져 눈시울을 적셨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반려묘를 키우고 있는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쓸모와 효용이라는 물감으로 짙게 덧칠한 색안경을 벗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빛깔들. 나는 빛을 채집하는 사람처럼, 저층 빌라들 틈새의 좁은 마당 위로 익어가는 감의 주홍빛과 누군가가 창가에 매달아 말리는 고추의 붉은빛을 눈에 담았다. 쇠락한 벽돌 담벼락 위로 일렁이는 가을 빛을 나침반 삼아 걷는 날들이 쌓일수록 나뭇잎의 색이 바뀌고 하늘의 색은 깊어졌다.
이제 영혼이 된 봉봉과 가만가만 걷는다. 색색의 팬지를 정성껏 키워놓은 어느 집 앞 화분에 주인이 붙여놓은 '꽃 꺾어 간 도둑놈아, 달라면 주었을 텐데'라는 문장을 보며 잠시 웃고, 정자 앞에 앉아 바둑을 두며 심각한 듯 미간을 모으는 할아버지들을 훔쳐본다. 골목의 평상에 앉아 참외를 깎아 먹는 할머니들, 지붕 위에서 말라가는 애호박. 내가 이 동네에서 좋아하는 풍경들.
봉봉을 떠나보낸 슬픔을 떨쳐내려고 시작한 산책길에서 만나는 건 가슴 깊이 그리워하는 봉봉의 모습이었다. 걷는 걸 힘들어했던 봉봉을 안고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천 가방에 넣어둔 물을 사이좋게 나눠마시던 일이며, 석양으로 물든 하늘에 봉봉의 형상과 꼭 닮은 구름을 발견하는 것도, 십여 년을 함께한 봉봉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다.
3부 멀리, 조금 더 멀리
소설을 쓰는 일이란 내 기호대로 높이가 알맞게 짜인 푹신한 침대에 홀로 누워 잘 닦인 유리창 너머로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보기 위해서 저마다의 서사를 가진 타인들이 만든 침대 위에 의자를 놓고 가까스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은 지붕도 벽도 없는 거리에서 뙤약볕에 익어가며 누군가 발견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한나절 동안 살구를 파는 것처럼 고독한 일이라는 사실을.
내게는 다 낡은 집의 수도가 터진 게 아닐까 걱정할 자유가 있었고 임박한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골목에 나가 얼음을 망치로 깨부술 자유가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로 그런 것들은 나를 고단하게 하고 안락해 보이는 타협책을 향해 손을 뻗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몫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내는 것이 값진 일이라는 걸 안다. 그것들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글을 쓸 자유,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꿀 자유, 타인의 기대나 시선에 부합하는 내가 아니라 오롯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마흔에 생긴 기미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던데. 봄볕 아래서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런 것 따윈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오후의 몇 시간 동안 나는 그저 행복했다.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행복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 찾아오는 도둑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찰나적인 감각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여성작가로서의 자유로운 자신을 되찾기 위해 남편과 정상가족이라는 안락함을 대가로 지불하고 고군분투하는 리비의 모습을 기록한 '살림 비용'을 읽으면서 리비를 조용히 응원하는 그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생활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녀도 안락해 보이는 타협책을 향해 손을 뻗고 싶기도 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성 작가인 그녀의 당당하면서 빛나는 40대는 즐겁고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하리란 예감하며 자신을 날마다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의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며 앞으로 긴 세월을 살아가며 채워나갈 새하얀 페이지들에 써 내려갈 존재들의 사랑을 적어나가고 싶다는 다짐들. 그런 밝고 사랑스러운 내일을 응원하고 싶은 건 같은 40대의 동질감이 아닐까 한다.
오래된 것이 아름다운 건 시간을 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사람이나 동식물처럼 생명을 지닌 것이든 공간처럼 그러지 않은 것이든, 무언가가 품위와 존엄을 가질 수 있는 건 수많은 상실과 슬픔을 견디며 쌓아올린 세월의 무게가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있다.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그것만으로도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세월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웃들과의 어울림, 어떠한 통보도 없이 찾아오는 소중한 존재들과의 작별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백수린이라는 작가로서의 성숙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글들로 인해 내 안에서 아주 조금씩 변해가는 것들을 담으며 마음을 톺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