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그냥 편한 친구와 수다를 떨듯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인데도
일상에서 무심히 놓치고 지나갔던 부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었어요.
저는 평소에 언어 선택에 민감한 편인데 그런 제 성격과도 잘 맞았던 책이었습니다.
제가 쓸쓸할 때, 수다 떨고 싶은 친구가 그리울 때, 좋은 친구가 되어 준, 고마운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나 삶을 직시하게 해주는, 그리하여 '오롯이 홀로 있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그 고독이야말로 인간다움임을 깨우쳐 주는, 김훈의 정직한 문장에 위로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 이 씨발놈들아. 니들만 살자고 물을 남의 동네로 밀어붙여! 물은 고루 퍼져야 하는 거야.(p.11)



 작년 가을에, 나는 하던 일을 작파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일을 그만두면서 나는 눈앞의 세상을 향해 외쳤다. 야! 이 인간들아, 이 인간들아! 그렇게 사니 좋으냐? 비명소리와도 같은 이 한 문장을 내뱉는 순간 눈앞이 흐려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인간들아.....를 입 안 가득 베어물고 시골로 내려가는 내 발걸음은 더듬거렸다.

 추수가 끝난 빈 논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 빠진 저수지 바닥에서 꿈틀대는 붕어처럼 나는 마른입을 뻐끔거리며 거품처럼 흰 입김만 쏟아냈다. 내가 쏟아낸 입김이 노을에 버무려진 공기속에서 흩어졌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연필깎이 칼을 손목에 찔러넣었다. 칼이 손목에 파고들때, 칼끝에 와닿은 피부의 감촉은 질겼다.


 

 니미, 농부가 무슨 죄가 있어서 벼락을 맞는가. 야, 별거 아냐. 일 단만 쓰자. 서너 줄만 보내.(p.137)




 그날 밤 팔뚝에 링겔을 꽂고 응급실에 누워있던 내 옆에 세 명의 인간이 더 들어와 누웠다. 도대체 약을 얼마나 먹은 거냐고 추궁하는 의사에게 약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어눌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중년의 여자는 바지에 똥을 지리고 있었다. 악취를 풍기는 여자 옆에서 함께 실려온 할머니가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농약을 먹고 누운 남자를 붙들고 젊은 여자가 통곡을 쏟아냈다. 의사와 간호사가 다가가 여자를 남자에게서 떼어내고 남자가 누운 침상 주변에 커튼을 둘러쳤다. 응급실 안을 메우는 악취를 뚫고 여자의 울음은 길게 이어졌다. 악취속에 누워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칼 끝에 와 닿던 질긴 감촉에 대해 생각했다. 고작 연필깎는 칼 따위로 이 질기디 질긴 것을 베어낼 수 있다 여겼다니. 인간아, 이 인간아. 나는 피식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인간아, 를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인간아, 이 인간아.



 물은 고루 퍼진다. 물이 퍼지는 법칙은 단순하고 간명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퍼진다. 물은 결코 개인의 사정을 봐 가며 흐르거나 퍼지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물의 무자비한 공평함이고 잔혹한 정의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인간의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일 것이다.

 소설속에서 김훈은 어떠한 희망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에 대해 말할 뿐이다. 김훈은 물은 고루 퍼져야 한다고 외치는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그러다 박터지는 인간에 대해서 말한다. 평화로울 수 있는 세상은 다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고운 뼈만 남은 폐허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세상은 이미 흘러간 세상이다. 인간은 결코 흘러간 세상에서 현재를 살 수가 없다.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은 말한다.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인간아, 강을 건너지 말라, 고. 강을 건너지 마라. 네가 어디로 갈 것이냐. 어디로 갈 것이냐고. 강 저편은 무한궤도에 깔려 으스러진 후에야 갈 수 있는 곳이라고. 그러고 난 후에 남은 자들은 슬픔도 안타까움도 아닌 다만 냉정한 정치의 언어로 너의 죽음을 포장할 것이라고.


 김훈은 연민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어떠한 가치판단도 불가능한 뒤섞인 세상을 펼쳐보일 뿐이다. 참혹함은 그저 참혹함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이 만류하면 듣고 싶어진다. 인간아, 강을 건너지 마라. 네가 어디로 갈 것이냐, 어디로 갈 것이냐고. 어떠한 희망보다도, 너무나 참혹하여 눈을 돌릴 수 조차 없는 김훈의 그 솔직함이 내게는 위로가 된다.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강 이편에서 살아가야 한다. 




서북경찰서 야간 당직사건 중에는 기삿거리가 없었다.(P.324)



 시골에서 가을과 겨울을 지나고 난 후 나는 다시 내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내 자리로 돌아와 바라보는 눈 앞의 세상은 여전하다.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 없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아무데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처음 내뱉었다는 강렬한 일성이다.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는 그의 아버지인 영조의 손에 죽었다.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가 아니라 큰아버지인 효장세자의 아들로 왕위를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등극하자마자 내뱉은 정조의 일성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몇 년 전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룬 모 역사책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정조의 즉위 일성에 착안을 해서 쓰인 듯한 그 책은 사도세자가 아버지인 영조와 다른 정치색을 가졌기에 죽임을 당한 것이라 주장했다. 광증으로 인해 뒤주에 갇혀 죽었다던 사도세자가 실은 영명했으며 그 영명한 세자가 죽임을 당한 것은 권력을 둘러싼 파워게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정조가 즉위하며 자신을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칭한 것은 바로 그런 내막이 있었기에 때문이라고 그 책은 주장했다.

 

사도세자를 본격적으로 신원한 그 책은 많은 텍스트에 영향을 미쳤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즉위를 다룬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책이 주장한 가설을 받아들여 쓰여진 ‘영원한 제국’이라는 소설은 소설 자체로도 성공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오랫동안 그 가설은 정설처럼 대중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러나 이 책 ‘권력과 인간’은 오랫동안 대중이 믿어왔던 가설을 정면에서 논박한다. 저자는 ‘한중록’을 번역하며 연구한 내용과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삼대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면밀하게 추적하고 복원해낸다.

영조는 미천한 출생으로 인해 한평생 콤플렉스와 강박증에 시달렸다. 정실인 정성왕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도 그러한 출생 콤플렉스 때문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영조는 평생 출생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 미천한 어머니를 둔 서손으로 태어난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역경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출생 콤플렉스에 역경이 겹쳤기 때문인지 영조는 매우 예민했고 강박증이 심했다. 호불호가 강해서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했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은 사람이 한 자리에 있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한 성격은 자식의 양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조는 같은 자식이어도 편애하는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을 혹독하게 구별했다.

사도세자는 사랑받는 자식이 아니었다. 한중록에는 사도세자가 고작 십 여세의 나이에 불과한데도 신하처럼 엎드려 아버지인 영조를 뵙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서술하면서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아직 어리신데 어찌 저리 엄하신고 싶더라’ 고 말한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사도세자의 광증은 이미 십여 세부터 싹이 텄으며 그 광증의 원인은 부친의 자애를 받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정상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탓에 사도세자가 미쳐갔다는 것이다.

 

‘권력과 인간’에서는 사도세자가 미쳐가는 과정을 한중록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요즘으로 따지면 주의력 결핍장애에 걸린 아이었던 사도세자는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강박증에 시달렸으며 광증이 폭력성으로 번져 급기야는 사람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권력과 인간’의 저자는 사도세자는 왕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권력지향적 인간형과는 거리가 먼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기질이었기에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권력과 맞닿는 상징성이 부여되는 왕실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권력과 인간’에서 부각되는 것은 당시의 정치역학적인 관계가 아니라 ‘왕실’이라는 특수성을 띈 한 가족의 비극적인 가족사이다. 영조는 훌륭한 왕이었지만 왕이었기에 자식을 가슴으로 보듬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조의 성격적인 결함은 자식에게 영향을 미쳐 자식을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내몰았다. 영조가 왕이 아닌 평범한 아버지었다면 그의 아들인 사도세자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이 권력과 직결되는 왕실이었기에 파괴되어 가는 한 인간의 내면은 경외의 대상이 되었을 뿐 연민의 대상이 되질 못했다. 그리고 권력은 냉정한 아비와 나약한 아들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무너뜨렸다.

 

결국 허물어져 가는 내면을 이기지 못한 사도세자는 미치고 말았다. 미친 나머지 절대권력인 아버지를 향해 차마 못할 말을 내뱉었다. 왕실이 아닌 일반 가정이었다면 그저 광인이 내뱉은 폐륜적 언사에 불과했을 그 말은 반역이란 죄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왕이었던 아비는 왕이었기에 미친 아들의 숨을 끊었다.

 

사도세자는 권력 다툼에 휘말려 죽은 영명한 세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자애를 입지 못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끝내는 미쳐버린 불쌍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영조는 콤플렉스와 강박증에 사로잡혀 아들을 돌아보지 못한 불쌍한 아비였다. 권력이라는 휘황한 빛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 권력의 허울 뒤에는 손을 맞잡을 수 없었던 불쌍한 아비와 아들이 있었다.

정조가 즉위 때에 내뱉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일성은 정쟁에 휘말려 죽은 아버지를 위해 복수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비극을 이해했고 그 비극으로 인해 자신이 통치하게 될 나라가 혼란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만 정조는 미쳐서 죽은 아비가 둘러쓴 ‘반역’이란 두 글자를 두려워했다. 권력은 사도세자에게 ‘광증’이란 병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권력은 그 광증을 ‘반역’이란 두 글자로 포장하여 정조를 죄인의 아들이라 부르며 발목을 잡았다. 천인인 어머니를 둔 영조의 콤플렉스는 정조에 이르러 ‘죄인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조와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황금기를 이끌어낸 위대한 왕들이었다. 그러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가족사를 묵묵하게 감내해냈다. ‘왕’이라는 권력의 표상으로 화려한 업적을 이뤄낸 영조와 정조의 내면에는 아들과 아비를 잃어야 했던 슬픔을 견뎌낸 한 ‘인간’으로서의 쓸쓸한 민낯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