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순신 <칼의 노래>

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임진왜란 최고의 명장 이순신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그의 늠름한 모습을 매일마다 접하는 100원자리 동전에서도 매일 볼 수 있으니... 그런데 이렇듯 친숙하게 느껴지는 장군을 정말로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까지 알려져왔던 신화적인 인물이자 영웅으로서의 이순신의 면모는 빼고 인간 이순신에 대해서..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장군의 위업에 대한 칭송일색의 위인전식의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정작 인간 이순신에 대한 비평서나 전기식의 글은 거의 전무하다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군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사다주신 위인전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일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단재 신채호가 집필한 성웅 이순신이라는 위인전과, 과거 군사정권기에 자기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부독재자들이 지나치게 이순신을 신화화시킨 영향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인간의 지나친 신화화(神話化). 존 F. 케네디는 예일대 연설에서 '진실의 가장 강대한 적은 의도적이며 가식적이고 비정직한 거짓이 아닌 지속적, 설득적, 비현실적인 신화'라고 신화화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우리들은 이 위대한 영웅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상실한 채 인간 이순신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김훈씨의 이 작품은 비록 소설이라는 문학형식을 통하긴 했지만 인간 이순신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이순신 이야기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고 그렇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껴 충무에 내려가 이순신의 칼을 몇날 며칠을 바라보다가 칼의 노래에 대한 대답으로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저자는 이순신이 인간 본성에 대해 환멸을 느껴 전쟁중에 죽고자 원했고, 결국 노량해전에서 의도된 죽음을 맞이했다는 가설하에 이야기를 전개한다. 글은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이순신이 주인공이고, 이순신의 내면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사건은 이순신이 임진란중에 조정의 모함으로 죄인이 되고, 고문을 받다가 원균이 전사하여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백의종군하게 되는 유명한 사건으로부터 시작,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저자의 문체는 대단히 간결하면서도 몽환적이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풍기는 강한 허무의식이 느껴지는 반면에 한편의 동양시를 바라보는 듯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뭔가가 있는 듯하다.

김훈씨는 이 작품을 글의 머릿말부분에서부터 강력하게 픽션이라고 강조한다. 아마도 이것은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는 작가에겐 꼭 필요한 작업이었을 겁이다. 그만큼 그의 존재는 우리 국민들에겐 성스러운 존재로 신화화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이 한 편의 뛰어난 소설이라는 껍데기로서보다는 한 위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순신도 육체적으로 고통을 느낄 줄 알았고, 여자를 사랑했으며, 눈물흘리고 인간의 본성에 환멸을 느꼈던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인간 이순신에 대해 그리고 인간 세계에 환멸을 느낀 한 인간의 내면 세계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