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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한 중국인이 있다. 그는 미국유학 중에 천안문 사태를 밖에서 겪게 된다. 그는 그 일 이후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의 삶을 택하게 된다. 지식인에게 천안문 사태가 주는 절망과 분노는 매우 컸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한 중국인의 미국생활은 단순한 도피일 수도 있지만 아주 개인적으로는 망명과도 같은 심정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된 나날들의 지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이 사람도 미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갖 험한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이 사람의 목표는 자신도 모르게 수정되어 버렸다. 애초에 유학을 오게 된 것은 정치학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시인이 되고자 했었다. 그러나 이민자의 삶은 그의 공식적인 것도, 사적인 꿈도 모두 내려놓게 했다. 그는 요리사가 됐고 식당을 운영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가는 성공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일원이 되었다.
자,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었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싶겠지만 그것은 그 꿈의 외부에서 보는 시각일 뿐이다. 또한 자유를 위해 미국에 머물게 됐지만 어느 순간 과연 자신에게 자유라는 것이 있었는지에 대한 짙은 회의를 발견하게 되는 것 역시 이민자 자신이 아니라면 알지 못할 일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지만 정작 자신의 꿈은 포기하게 된 아이러니를 이 사람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거기다가 조국과의 유리된 삶이라는 고독은 덤이자 이민자에게는 평생 짊어져야 할 근원적 무게감이다.
물론 이민자에게 경제적 안정은 최우선적 과제이다. 의식이 족해야 예를 안다는 말처럼 생존이 된 후에 꿈이고, 자유고 따실 겨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민자의 형이상학적 관점이란 일단 배부른 고민이라고 꼬집을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부른 고민은 과연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이 배부른 고민이 이민자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보면 외국 이민자들이, 버젓이 외국 영주권과 시민권을 갖고 사는 그들이 정작 그쪽 나라 정치보다 조국의 상황에 더 열심인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조국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이와 비슷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무리 여권의 국적이 달라진다고 한들 한 개인이 갖는 국적은 변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 때문에 이 소설이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어쩐지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이 주인공의 상황과 한국 이민자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이민자에게 적용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천안문사태가 언급되는 지점에서 이 경험의 특수성은 매우 제한되게 된다.
그리고 이민자도 아닌 내게 이 소설이 유난히 잘 읽혔던 이유는 요즘 우리가 국내에서 겪는 많은 일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조국을 떠나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안전하지도 않고, 안주할 수도 없이 떠도는 삶 같은 요즘의 상황이 마치 지금 내가 미국이나 어디 다른 나라에 유학 중이라면 귀국을 포기하고 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또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 기술된 이민자의 삶은 그런 충동을 제어하게 해주기도 했다. 이민자가 자유를 위해 포기해야 할 대가가 너무 컸다. 아니 자유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 역시 자유였다. 전자는 국가와 상관한 것이고 후자는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이민을 꿈꾸는 내게 시뮬레이션의 효과를 주었다. 또 한편으로는 잊고 살아야만 했던 꿈을 다시 이 두 권 분량의 긴 소설을 읽는 동안 다시 가슴에 꺼내놓게 한 것도 고마운 점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