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름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Asia 제17호 - Summer, 2010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아시안이다. 사실은 별로 와닿지 않는 말이다. 적어도 한국인에게 아시안이라는 말은 마치 외국인을 지칭하는 말처럼 낯설다. 너무 어릴적부터 미국과 유럽을 지척의 이웃처럼 느끼며 자라온 탓이 클 것이다. 가끔씩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오랜 이웃 앵글로 섹슨과 달리 생겼다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성년의 날을 맞을 때까지 겨우 일본이나 중국 정도를 제외하고 아시아 문학을 접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크 아시아는 그런 한국의 이율배반적인 정체성을 조용히 나무라는 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도 이런 계간지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17번째를 맞은 무크 아시아는 특별히 팔레스타인을 다뤘다. 어쩌면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낯선 지명이 팔레스타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따라붙는 연상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다. 터번을 두른 위험하고 불온한 사람들 팔레스타인.

그러나 나라를 빼앗기고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벌인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외면해서는 안된다. 복잡한 세계 정치를 논하기에는 이 지면이 어울리지도 않고, 그럴 만한 식견도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팔레스타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곧이곧대로 읽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막연한 동질감은 느낄 수 있어 무크 아시아를 받아보는 마음은 80년대 금서를 대하듯 설레임이 느껴졌다. 아니야 다를까 책 속에는 우리의 1940년대라고 해도 좋고, 80년대라고 해도 좋을 절규와 몸부림이 가득하다.

그러면서 김지하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하나 타는 가슴속 목마름에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온 저푸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 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에
서툰 백묵글씨로 쓴다


이 시에 답하듯 무크 아시아에 실린 이부 살마의 시 '우리 돌아가리'를 대할 수 있었다.

탄식하는 해안이 나를 부른다
내 탄식은 시간의 귀에 쟁쟁하다
도망하는 사내들이 나를 부른다
그들의 땅속에서 낯설어진다
그들의 고아가 된 도시들이 나를 부른다
그대의 마을과 성곽들이
내 친구들 내게 묻기를 "우리 다시 만날까?"
"우리 돌아가게 될까?"
그래! 우리 이슬 머금은 대지에 입 맞추리
우리 입술 붉은 열정으로 달아올라
내일, 우리 돌아가리




마이클 셀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유독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저자도 놀라는 이 현상이 정말 정의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또 다른 문화기호의 소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무크 아시아에서는 아주 명징하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독립과 해방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무크 아시아의 창간호부터 16호까지의 내용은 겨우 커다란 주제밖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다룬 17호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듯 하면서도 가물가물해진 민주주의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어릴 적 일기에서 그때 못해서 안타까웠던 어떤 고백을 발견하듯이 팔레스타인 그리고 우리가 사는 가까운 세계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찾아내기에 충분했다.

계간기 아시아는 정작 아시안이면서 아시아에 대해서 지극히 이국적인 시각을 가진 우리들의 좁은 시각을 넓혀주는데 작지만 의미있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희박한 관심 속에서 각각의 아시안 문학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 큰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책이 발간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내가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해진다. 누군가 권하고, 또 소장하고 싶은 책을 발견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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