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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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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는 세상의 모든 문학이 그렇듯이 행복보다는 불행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접근하기 대단히 고통스러운 아동학대, 가정폭력 그리고 아동성폭력 등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인 단어들로 인해서 어떤 관음증적 동기를 가지고 이 책에 접근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침묵의 무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책임감 넘치는 진지한 자세로 사회문제에 대해서 접근하고 있다.

이 소설의 작가에 대한 짧은 프로필을 통해서도 그 진정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작가 헤더 구텐커프는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아이오와의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16년간 초등학생을 가르쳤다. 침묵의 무게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칼리의 침묵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말을 걸어주었던 교사를 얼핏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이 픽션인지 넌픽션인지 읽으면서도 판단이 쉽지 않을 만큼 작가 헤더의 묘사는 정말 생생하고 섬세하다.

사건이 아닌 실종된 두 어린 소녀 칼리와 페트라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쫓아가는 형식이어서 때때로 심리학 부교재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렇게 다양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심리를 정말 꼼꼼하게 관찰하고 깊이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한번 터지면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슬픔에 빠뜨리고 마는 아동 범죄에 대한 예방을 직접 거론하고 있지 않지만 밑그림처럼 소설 전반에 깔아두고 있다.

그런 친절함 때문에 심리학에 대해서 정말 얄팍한 지식밖에 갖고 있지 못한 문외한인 나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치료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리게 됐다. 침묵의 무게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여덟 명 정도가 짧은 챕터를 오가며 묘사되고 있다. 또한 범죄의 현장보다는 범죄 혹은 오해의 현상을 더 치밀하게 구성하고 있다.

독자는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떻게 오해를 통해서 비극으로 치닫는가를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는 범죄보다 오해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칼리의 폭력적인 아버지 그리프를 범인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직접적인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범인이어도 충분할 아주 많고, 치명적인 잘못들을 자기 가족들에게 저질러 왔다.

그런 그의 잘못으로 인해 칼리의 아버지는 죽어도 싼 인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죽어도 싼 인물일지라도 죽어야 할 범죄는 저지르지 않은 칼리의 아버지의 죽음도 또한 비극이며, 불행한 결과이다. 그의 죽음으로 긴 세월 침묵에 스스로를 가뒀던 칼리가 말을 하게 되고, 가족들 또한 오랜 불안에서 해방되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죽음은 비극적 결말이다. 모두 그리프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그리프 혼자만 희생된 이 비틀어진 결과는 표면적인 해피 엔딩에도 불구하고 비극이 숨겨져 있다.

그리프의 아내 안토니오, 아들 벤 그리고 딸 칼리는 모두 그리프의 폭력적인 태도에 피해를 받아온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받아온 상처와 불신으로 인해서 직접적인 가해 없이 그리프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만일 사건의 해결 부분에서 칼리의 엄마 안토니오가 정신과 의사에게 비로소 칼리를 의뢰하듯이 진작부터 이들 가족이 심리 상담을 받아서 조금씩이라도 상처를 이겨냈다면 처음부터 칼리의 실종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이 가족의 비극은 이런저런 생각과 반성을 자극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무엇이든 다 이해하고, 용서할 것만 같지만 현대는 그런 전통적 가치에서 자주 이탈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또한 가족이라는 절대적 울타리 내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일들에 대한 위험성도 경고하고 있다. 이 소설은 가족이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불행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가장의 죽음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는 더 복잡한 문제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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