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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 티베트에서 만난 가르침
현진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사실 수필은 지루하다. 게다가 선문답스러운 의미까지 담기면 호감은 가면서도 선뜻 손에 들게 되지 않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봤다면 단연코 먼저 짚거나 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평단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덤덤히 책장을 넘겼다가 시쳇말로 빵터진 귀절로 인해 흥미를 갖고 계속해서 읽어갈 수 있었다.  


'하늘에 물들다'라는 제목이 붙은 글의 끝부분에 고사성어 때문이었다. 음만 적자면 대단히 낭패가 될 수밖에 없는 글이다. 여인음수 냉난자지. 한자는 다소 작게 인쇄되어 습관처럼 음만 읽었다가 퍼뜩 " 아 이 스님이 땡초신가?"싶었다. 그러나 한자를 대하자 그런 오해는 금세 풀렸다. 如人飮水 冷暖自知. 풀어 말하자면 '물이 차고 더운 것을 마셔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해는 풀렸으나 이 현진이란 점잖은 법명 뒤에 숨겨진 스님의 장난기를 느낄 수 있어서 친구라도 삼은 듯 즐거워졌다.

그렇지만 그런 장난기는 뒤로 가도 좀처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려운 말 써놓은 것도 아니고 잠결에 들어 이내 흘려버린다 하더라도 크게 아쉽지는 않은 평범한 이야기들을 덤덤히 읽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종이장에 침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읽다가 문득 여행을 가고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커다란 제목을 달아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하늘에 물들다' '시간의 수레바퀴' 그리고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라는 근사한 제목이다. 그런데 그보다 지은이 혹은 편집자는 그 큰 제목 위에 또 작은 부제를 달아놓은 것에 어떤 의미를 남겨두지 않았나 싶다. 큰 제목들은 서로 따로인 듯 하지만 작은 부제들이 큰 제목들을 연결하는 새끼줄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한걸음 걷고 하늘보기 - 또 한걸음 걷고 생가하기 - 다시 한걸음 걷고 그리워하기. 수수한 점층 수법의 이 부제들로 인해서 낱장의 심상들을 흩어지지 않게 꼭 묶어두는 것 같았다. 그 걷고 걷고가 자꾸 이 책 군데군데 떠남을 자극하는 티베트 사진과 힘을 보태서 여행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처없이 걷는 여행은 겉보기와 달리 여행자 자신에게는 개고생인 법이다. 이외수 초기 작품인 꿈꾸는 식물에서 따오자면 "보는 사람에게는 낭만이지만 하는 사람에게는 다리 아픈" 것이 걷는 여행이다.

엄홍길 대장쯤 되지 않고서는 그런 개고생 여행에 쉬지 않고 씩씩하게 전진 또 전진할 중생은 없을 것이다. 자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쉴 틈을 찾기 마련이고, 어느 한적한 마을 당산나무 아래에 서면 괜히 폼잡고 가부좌라도 틀고 싶어진다. 그때 이 책을 딱 꺼내들고 몇 장 넘기면 발이 다소 저려와도 가부좌를 풀지 않고 버티게 해줄 것 같다. 
 

날이 사정없이 덥다. 이런 삼복더위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절대로 현명한 일은 아니다. 태어나길 책사라면 몰라도 운동도 필요하고, 복날 닭이나 멍멍이를 괴롭힐 줄 아는 속된 나로서는 굳이 여름 더위를 이기자면 무협지나 추리소설 쪽을 택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중간쯤에서 이 책을 내려놨다. 속되긴 해도 끈기는 있어 책을 읽다가 멈추는 법은 없는데, 대략 중간쯤에서 읽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 하다못해 가까운 산이라도 올라 마저 읽기로 다짐한다.

비록 여행은 아직 형편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한걸음 걷고, 또 한걸음 걷도 다시 한걸음 걷고난 후에 나머지를 읽어봐야 이 현진스님의 멋을 비슷하게나마 흉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삼복더위에 산을 오를라면 그것도 참 개까지는 아니어도 강아지 고생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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