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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550쪽 정도의 아주 긴 소설이라면 뭔가 강렬한 호객성 데코레이션을 쓸 법도 한데, 녹가루가 떨어진 낡은 정 한 자루를 큼지막하게 배치한 표지는 적어도 두 가지에 대한 암시 혹은 경고를 담고 있을 거란 생각을 들게 했다. 그 한 가지는 이 소설이 시간 때우기에 적합한 눈요깃감을 제공하지는 않을 거란 불길한 예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뭔가 거칠게 가슴을 파고 들 것이라는 인상이었다. 그 예감과 짐작은 잘 들어맞았다.  

아메리칸 드림이 유효기간 지난 특별상품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아직도 제3세계 어디에는 유일한 돌파구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인 몇 퍼센트쯔은 그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소설 초입에도 간단하게 언급하는 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아주 신랄한 리포트가 바로 아메리칸 러스트이다. 미국에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라지만 사실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선입견은 내게 아집이었을 수도)는데 의외로 책장 넘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계속 읽어가면서도 차마 미국이라는 배경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메리칸 러스트의 배경 도시는 비참한 꼴을 감추지 못한다. 아주 젊은이와 아주 늙은이만 사는 도시. 얼핏 우리 농촌을 떠오르게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인 뷰엘이라는 곳은 오히려 태백 등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 기업을 모두 국영으로 아는 무식함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런 오해에 대해서 조금은 용서할 수밖에 없도록 망해버린 철강도시의 우울한 풍경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아메리칸 러스트는 크게 여섯 명의 인물을 핸드 카메라를 들고 따로 따로 쫓아가는 컬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간혹 그 인물들이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여전히 소설의 화자는 그들을 공간적으로 유리시킨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그들이 겪는 심각한 소외를 외면하지 못한 치밀한 묘사라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소설은 일인칭과 삼인칭의 변화 속에서 독백과 묘사를 반복하는데 그렇게 시점이 변화해도 자주 그 변화를 놓칠 정도로 소설 속 화자가 누가 되었건 덤덤하다. 

살인과 도주 그리고 또 다른 살인으로 결말지어지는 사건만 쫓는다면 이 소설은 몇 번을 읽어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 그런 사건 따위는 마치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정도로 여기는 것이 좋다.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포와 아이작, 아이작의 누나 리와 헨리,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와 불필요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보다 나은 경찰서장 헤리스. 이 여섯 명 중 삶의 모습이 다른 것은 예일대를 졸업해 부자와 결혼한 리 하나뿐이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 모두는 같은 도시에 살뿐더러 직업이 뭐든 크게 다를 바 없는 칙칙한 색깔의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마치 책 표지의 낡은 정에서 떨어져나온 녹가루는 그 도시에 아직도 살아야 하는 모든 주민들을 상징하는 것처럼 등장인물 모두는 참 측은하다. 그런데 묘하게 공감이 된다. 대학조차 진학하지 못한 천재소년 아이작, 아이작보다 덩치는 두 배지만 머리는 그 절반도 안되는 포 그리고 미인에다가 머리까지 좋아 일찍부터 상류사회에 진입한 아이작의 누나 리. 이런 간력한 프로필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이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은 친구, 옛 애인 등으로 또 얽혀 있고 그것은 우발적 살인과 은닉으로 한번 더 엮이게 된다.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이란 것을 발견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메리칸 러스트의 최종 추출물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희망이라는 것은 현실의 절망을 인정하는 말이다. 희망이 발견될수록 현재의 절망요소를 그만큼 더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아메리칸 러스트의 결말은 550쪽의 긴 책장을 넘기면서 포와 아이작에게 이입된 독자에게 해피엔딩을 달콤한 사탕을 준 것같은데 그 사탕이 다 녹기도 전에 그것이 희망이 아닌 또 다른 절망임을 알게 될 것이다.  

고백컨데, 이 소설을 가능한 빠르게 읽고자 했다. 그 의욕은 책에게 버텨내지 못하고 촘촘히 읽게 됐다. 또한 가능하면 앞으로 최소한 한 번은 더 정독해야 할 용기를 갖게 한다. 번역문학이라 문장이 주는 맛이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정말 집요하게 파고드는 마치 여러사람이 각자 발언하는 듯한 6중주의 하모니를 더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니 그런 도전을 자극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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