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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 51개의 질문 속에 담긴 인간 본성의 탐구, 동식물의 생태, 진화의 비밀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2년 1월
평점 :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도 환경, 생태, 또는 자연에 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그 많은 책이 대부분 번역서라는 걸 보면. 전세계가 글로벌시대답게 한 목소리로 자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온난화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 재해를 긴장의 시선으로 바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관심의 촉구와 이해는 주로 자연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단순히 '자연은 인간의 문명을 발전, 진보시킬 토대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외치는 과정에서 자연은 하나의 대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는 이득이나 부를 창출해낼 수 있는 기반에 불과했다. 그러나 더 이상 자연을 하나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그 많은 환경관련책에서 지양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제 자연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필요성을 느낀다. 마틴 부버의 [나-너]가 다시금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목격하게 되는 많은 사건들, 예컨대 사대강과 관련된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 아직까지는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한다. 환경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적인 권력 구도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과의 관계 정립이 어려운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한다. 우선 자연과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서로 교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여기치 못한 자연의 변화들을 일으키고 있는지 인간에서 말해주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자연을 우리는 하나의 총체로 말하고 있지만 이 지구상에는 자연이라는 범주안에는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명체들은 인간에게는 자연이라는 큰 이름하에 간과되고 무시되고 있다. 다시말해 그 많은 생명체들도 각각 인간에서는 하나의 교감해야 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이런 상황에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책이 바로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이다. 원래 독일어로 출판된 이 책의 원제목이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과 동일한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말 제목은 환경 또는 자연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자연현상들과 수십억년을 지내온 자연은 제목처럼 주어이다. 다시 말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자연 속에서 더부살이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하고 의심/의문하게 된다.
저자인 요제프 라이히홀프의 생각 또한 그런 쪽으로 경도되어 있지 않은가한다. 진화생물학자로서 자연에 대한 시각은 시간적으로 굉장히 넓다. 어찌보면 그가 바라보는 시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제목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닌가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연은 인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인류에게는 자연이 필요하다. 인류가 개발한 온갖 기술은 자연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기술로 자연을 대체할 수는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이런 단언을 할 수 있는 것은 평생동안 그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 자신이 살아온 주변환경에 대한 애정에 기인한 듯하다. 나아가 지은이의 자연에 대한 애정은 진화생물학이라는 전문성과 만나면서 독특한 자연에 대한 이해를 낳은 듯 하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총체적 자연 뿐 아니라 자연의 구성원들인 수많은 생명체들에 있고 인간은 그가 볼 때 그 생명체들의 주인이 아니라 한낱 구성원일 뿐이다. 인간의 문명 또한 그가 볼 때에는 진화의 과정에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최근 많은 환경관련저서들이 지적하고 있는 환경파괴의 주범으로서의 인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언뜻보기에는 이 환경적 위기 또한 진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는 "동식물의 환경이 어떤 방향에서, 어느 범위로 변화할 것인지는 인류의 행동에 달렸다. 그리고 이 '행동'이 언제나 필수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 책의 재미는 이런 자연에 대한 거시적 이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꽃을 좋아하는가?에서 시작된 인간의 진화과정에 재미난 이야기 부터 조류, 어류, 포유류, 심지어 작은 곤충들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주변을 바라보도록 하는 재미까지 제공한다. (물론 아쉬운 점은 그가 말하는 동식물들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주변이 아니라 그의 주변이기에 약간은 낯선 면이 없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환경의 위기를 진단하고 천명하고 알리기보다는 지금의 위기에 대한 또다른 생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목시적이지 않고 우리의 환경에 근심과 걱정을 확인하는 책이 아니라 새로운 긍정과 작지만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듯 하다.
"포유류와 더불어 높은 체온으로 환경에 종속되지 않은 채 비교적 많은 자유를 누리는 조류와 같은 동물은 새로운 환경으로 압박을 받기보다는 대부분 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