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구판절판


"공부하는 사람이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크나큰 병통이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 (이탁오 『분서』)-69쪽

우리 시대는 온통 시각적 스펙터클이 지배하고 있다. 청각과 후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이 시각의 권위 아래 포섭되어버렸다. 물론 그 기원은 저 20세기 초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동에서 유래한다. 인쇄술의 보급과 더불어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던 것들이 모조리 문자의 틀에 갇혀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입말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맛깔 넘치는 낱말들과 기발한 표현들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각의 군림은 가히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TV,인터넷에 DMB,핸드폰, 대형전광판 등 온통 시각매체가 24시간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어 매고 있다. 이 시각의 폭주에 휘둘리다 보면 아주 짧은 단위로 명멸하는 스펙터클에만 길들여져 버린다.-100-101쪽

특히나 요즘처럼 지식 검색과 프리젠테이션이 횡행하는 시대에는 정보와 정보사이를 연결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네티즌들의 글쓰기나 블로그의 글들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거기서는 전체적 맥락을 짚기보다는 일면에 대한 과도한 집착, 감정의 적나라한 노출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를테면, 소통보다는 독백에 더 가까운 글쓰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중략)그리고 그런 한에선 아무리 지식이 많다 한들 그저 파편적인 정보에 불과할 뿐 어떤 의미나 맥락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지식과 정보는 넘쳐나는데 소외는 극심해지고, 제도는 비약적으로 발전되는데 개인은 한없이 왜소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101쪽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랑따위는 없다. 그러니 운명적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의 운명을 바꾸어줄 만한 능력을 가지면 된다. 그리고 그걸 터득하는길은? 오로지 독서밖에 없다!-114쪽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만약 지금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운명의 궤적을 변경하고 싶다면, 문체를 바꾸면 된다. 거꾸로, 문체를 바꾸고 싶으면 모름지기 표정을, 몸을, 삶을 바꾸어야 할것이다.-139쪽

대게 아토피나 암은 마음의 질병이라고 한다. 사실 몸과 마음은 경계를 선명하게 구획하기가 어렵다. 몸이 곧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또 몸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문제는 이 둘이 따로 놀기 시작할 때다. 몸이 마음을 버리고, 마음이 몸을 돌아보지 않게 될때, 그때부터 병이 싹트기 시작한다. 먼저 마음이 닫히면서 기운이 안으로 울체되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긴다. 그 결과 아토피처럼 자기 피부를 적으로 생각해 공격하거나, 아니면 암세포처럼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고립되었다는 절망감이 공격과 적대를 낳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외부와 소통하는 데 있어 웃음보다 더 강렬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웃음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현대인들은 그만큼 웃음에 인색하다. '거리두기'와 '자의식'에 길들여진 탓이다.
....남을 웃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잘 웃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것. 그것은 늘 명랑한 웃음으로 표현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웃음에는 반드시 좋은 관계들이 전제된다.-163쪽

현대인들은 이러한 신체적 직관력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합리성과 이성이라는 척도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초래했고, 그것은 다시 몸과 정신의 분리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운명을 저 멀리 어딘가에 따로이 존재한는 것인 양 간주하게 되었다. 또 겉으로 합리성이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삶은 결코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맑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모든 고정된 것을 연기처럼 사라지게'하면서 도래하였다. 그만큼 가변성과 유동성이 지배하는 체제라는 뜻이다. 따라서 현대인들의 삶은 늘 불확실성과 우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이러한 모순과 간극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이 항상적으로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누군가 내 운명의 지도를 그려준다면'하는 바람을 가지는 거야 지극히 자연스럽다. 날이 갈수록 온갖 점성술이 번성하는 것도 그때문이리라.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라,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라 한다. 문제는 운명에 대한 이러한 열광을 체질과 일상에 대한 통찰로 변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68쪽

즉, 자신의 몸과 일상의 흐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무작정 여러 점쟁이들만 편력하고 다닌다면, 그거야말로 운명으로부터의 소외나 다름 아니다. 우리연구실에도 그런 후배들이 더러 있다. 나는 그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준다. 운명이 궁금하냐? 그럼 네 몸을 잘 관찰해봐. 네 몸의 동선과 습관,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활동, 그게 바로 너의 운명이야라고.-168쪽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희노애락은 그 자체로는 번뇌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거기에다 자신의 전도망상을 덧씌움으로써 스스로 번뇌를 쌓아간다. 그게 바로 두번째 화살이다.-191쪽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공부 또한 그러하다. 공부하면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뭔가를 얻게 될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공부하는 그 순간, 공부와 공부사이에 있다는 바로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 고로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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