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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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사회] 이제 됐어? / 김규항
 
 
 
한겨레  
 








 

»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교육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정현 신부님이 그랬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중고생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가 갈수록 어렵더라고요. 걔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못 알아듣겠고 걔들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아이들 어릴 때부터 생활하는 걸 보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농부들은 농사는 정직한 거라고 말한다. 땀 흘려 수고한 만큼 결실을 얻는다는 뜻이다. 시기에 맞추어 꼭 해야 할 일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뜨리면 어김없이 농사를 망치게 된다. 교육이란 게 농사와 같다. 아이가 다섯살 무렵에, 열살 무렵에, 열다섯 무렵에 꼭 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걸 하나라도 못하고 넘어가면 그 상흔은 일생에 걸쳐 남는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연령대 아이들이 꼭 해야 할 일은 ‘노는 것’이다.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정신적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 된다. 대개의 아이들이 어머니가 저녁 차려놓고 ‘잡으러 다닐 때까지’ 놀던 시절에 자란 내 또래 가운데에도 어떤 사정 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한 사람은 겉보기엔 멀쩡해도 인성이나 대인관계에 반드시 문제가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 스스로는 모르는 사람을 보면 십중팔구 어릴 때 제대로 못 논 사람이다.

그런데 2010년 한국의 초등학생 가운데 제대로 노는 아이가 있는가? 어지간한 집은 저녁까지, 교육 좀 시킨다는 집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돈다. 세계화가 어떻고 국제경쟁력이 어떻고 하지만 거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이따위로 생활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뿐이다. 도무지 사회에 미래가 안 보인다 탄식들 하지만 한국엔 분명한 미래가 하나 있다. 이대로라면 10년 뒤 한국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든 청년들로 가득 찬다는 것이다.

지난번 얼핏 적었듯 내가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 딸과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 이유도 그래서다. 두 아이는 공부를 곧잘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일류대학에 갈 수 있는가 없는가와는 별개로 그에 이르는 20여년이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준다는 사실을 고려했다. 요컨대 나는 그들이 유리한 학벌과 경제적 안락을 가진 로봇으로 자랄 가능성보다는, 소박하게 살더라도 정상적인 인성과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해가 다르게 부자의 아이들이 외고와 일류대를 채워가고 있다. 하긴 영어학습지 하는 아이와 방학이면 두어달씩 미국에서 살다 오는 아이가 경쟁을 하고 있다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앞서가는 아이들도 역시 사람인지라 대가를 치른다. 근래 서울의 부자동네엔 잘 꾸며진 아동심리상담센터와 소아정신과가 부쩍 눈에 띈다. 아이들의 정신 건강과 성적이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생각이 그곳 엄마들에게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이가 심리상담을 하고 정신치료를 받는 일은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는 일과 같다.

얼마 전 한 외고생이 제 엄마에게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투신했다. 유서는 단 네 글자였다. “이제 됐어?” 엄마가 요구하던 성적에 도달한 직후였다. 그 아이는 투신하는 순간까지 다른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였고 투신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런 아이였을 것이다.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이 매우 빠르게 늘고 있다. 아이들은 끝없이 죽어 가는데 부모들은 단지 아이를 좀더 잘살게 하려 애를 쓸 뿐이라 한다. 대체 아이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우리는 정신을 차릴까?

 

김규항블로그의 글입니다. 

2010/07/09 14:31

정상범주 안에서


후배(그 일을 내게 알려준)가 이번 글이 트윗 세계에서 반향이 크더라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걸 특별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애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데..” “넌 기자니까 워낙 별의별 일을 다 봐서 그렇지. 물정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 “그래도 그렇지..” 그의 말마따나 트윗 세계에서 꽤 많은 반향이 있었고, 보론 삼아 몇 자 적어본다.
현재 한국의 자살율이 OECD 1위라는 건 다 알 것이다. 한국의 자살율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 통계청 통계가 아닌 경찰청 통계는 그보다 훨씬 높아서 경찰청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이 OECD 자살율 1위가 된 건 이미 98년이다. 한국사회가 이른바 본격적인 신자유주의화를 시작했다는 그해다. 그리고 한국에선 자살이 사고사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한다면 한국의 자살율은 가히 독보적인 1위인 셈이다. 가슴 아픈 일은 자살이 현재 15~24세 청소년 사망원인 가운데 1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특히 아이들의 자살은 주요 매체에 거의 보도가 되지 않는다. 사연이 없어서 기사거리가 안 되어서가 아니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데 사연이 없겠는가. 보도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 즉 모방 자살 현상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라는 걸 만들어 언론사에 보도 자제를 요구하고 있고 언론사 스스로도 무절제한 보도가 반사회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정작 베르테르 효과가 가장 높은 유명 연예인 자살은 빠짐없이 보도가 되는 이유는 그게 그런 부정성을 불식할 만한 기사거리라 여겨지고, 앞서 말한 권고 기준의 '유명인'에 대한 내용이 애매한 것도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아주 간혹 아이들의 자살이 보도된다. 이를테면 조선일보엔 “외고생 또 투신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명문대 진학률이 상위권인 D외고 학생 2명이 한 달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라는 꽤 구체적인 기사가 실린 적도 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며 그게 개인적인 이유를 넘어 모든 아이들이 겪고 있는 지옥 같은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이다. “이제 됐어?”는 한 아이가 제 엄마에게 남긴 말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말이다.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잘살게 하겠다’는 이 어리석은 대열에 아이를 참여시키고 있는 한 그 아이는 바로 내 아이이며 그 엄마는 바로 나다. 내 아이는 아직 살아있다고 혹은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고 해서 남의 일로 생각하는 건 지성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후배가 말한 ‘특별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연예 가십기사’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마음에 걸린다.
다른 사람이 겪은 아픈 일에 대해 ‘정상 범주’ 안에서 반응할 줄 아는 것은 우리가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김규항칼럼은 이제됐어라는 말을 써놓고 자살한 외고생이 있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불붙었습니다. 황우석사건과 타블로 사건과 천안함 사건등 우리나라의 불신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요. 불확실한 사건에 대해서 칼럼에 기고했다,아니다 공인된 사실일텐데 신문이나 방송을 타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또 김규항씨가 말하는 태도에 대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청소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보다 이미 머릿속에 사회를 규정하고 그 인식에 부합하는 사례를 드라마틱하게 공개해 세상을 단죄하려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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