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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플란넬 속옷
레오노라 캐링턴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7년 6월
평점 :
페미니즘 SF 선집 『혁명하는 여자들』한국어판에 미공개 되었던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다섯 편의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는 '갇힘'에 관한 이야기로 다양한 형태의 갇힘을 제각각의 인물과 공간들로 그려내고 있다.
상어섬에 위치한 감옥 '만약의 성'에 갇혀 탈출을 꿈꾸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은 '폐렴과 달리 불치병인 모성'을 앓고 있고 가정 내의 노동생명이 끝난 여인들이다. 정성을 다해 자녀를 기르고 남편을 케어했음에도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치 않게 장성한 자녀들에 의해 가두어진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어머니.
상어섬은 무기징역수를 위한 곳이다. 모성도 기한이 없다. _ p.27
모성이란 어떤 직무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모성은 종신형이다. _ p.33
이 단편을 읽으며 존재로서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자식으로서, 딸로서의 '나'가 혹시 어머니의 모성을 인질로 그녀의 삶을 억압했던 것이 아닌가. 그녀의 희생을 너무나도 당연하게만 누렸던 건 아닌가.
- L. 티멜 듀챔프 「마거릿 A.의 금지된 말」
정부에 의해 사회로부터 오롯하게 격리된 여인 마거릿 A.를 만난 인터뷰이인 '나'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직접적인 만남을 갖고, 만남 이후의 이야기를 정리요약한 보고서 형식의 소설이다.
정부로 인해 불온한 존재라는 취급을 받은 마거릿 A.는 정부에 의해 가족들에게서, 친구들에게서, 직장에서도 떼내어져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에 감금된 채 홀로 생을 살아간다. 정부는 그녀의 말을, 그녀의 존재를 사회 체제를 붕괴시킬 만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녀를 격리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녀의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거대한 힘을 가진, 무장한 국가 권력이 자그마한 중년 여인, 흑인, 또한 개인에 불과한 마거릿 A.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정작 마거릿 A.의 생각과 언어는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정부에 의해 이미 지워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거릿 A.를 둘러싼 국가의 검열적 태도는 지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언론과 SNS 조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굉장히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짧은 단편이다. 주인공인 '나'는 일단 인간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주인공은 우주 털실을 통해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엮어 존재했으나 어느 순간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으나 그 사실을 모르는 주변에 의해 성인(聖人)이 되기를 강요 받는다. '나'는 주변에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를 저지름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제목에 등장하는 '플란넬 속옷'은 소설 초반에 언급되는 주인공의 의상이다.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고 여성도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요구받는 존재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 그리고 아름답지 않은 존재에 대한 배제가 현실 사회에서의 일처럼 엿보인다.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을 따르지 않은 대신 스스로 갇힘으로써 사회로부터 벗어난 자유를 추구한 주인공이 인상적이다.
여기 내가 앉아 있다. _ p.89
17세기 말 동화작가였던 사를르 페로의 <푸른 수염>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베아트리스는 백인과 같은 피부를 가진 흑인이며 아름답고 총명했다. 여러 남자와 연애를 즐겼지만 종래에는 안정된 구애를 해온 사무엘(흑인)과 결혼한다. 소설은 부부생활을 하는 베아트리스와 사무엘, 처녀 시절의 베아트리스와 사무엘의 구애 과정을 교차하며 담고 있다. 굉장히 긴장감이 넘치는 소설이다.
사무엘의 유리병은 <푸른 수염>에서 열쇠를 연상시킨다. 푸른 수염이 이 열쇠의 문만은 절대로 열지마, 라고 했던 것처럼 누가 죽으면 영혼이 담길 푸른 병을 나무에 걸어야 한다는 사무엘의 미신과 그렇기에 유리병을 손대서는 안된다는 경고는 푸른 수염의 경고와 흡사하다.
이 단편에서 흥미로웠던 건 사무엘이라는 캐릭터가 갖는 백인에 대한 동경과 흑인으로서의 낮은 자존감이 큰 폭으로 상반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를 야수라고 생각할만큼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며 백인과 어울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백인과 같은 피부를 가진 베아트리스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가 알게 모르게 그녀의 피부색을 관리한다. 베아트리스는 임신을 한 상태로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떠올리며 사무엘과 아이와 함께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유리병을 깬 베아트리스는 사무엘이 열지 말라고 했던, 그의 첫번째 아내와 두번째 아내가 죽어나갔다던 방의 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들의 시신을 발견함으로써, 또한 자궁이 적출된 그녀들의 시신에 의해서 사무엘이 자신의 피를 이은 흑인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무엘이 그녀들을 죽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깨어진 유리병에서 아내들의 유령이 풀려나고 베아트리스는 생각한다. 유령들이 사무엘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은 베아트리스에게 복수를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아내들의 유령이 베아트리스를 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의 연대를 바란다.
굉장히 시적인 단편이다. 인물의 이름에 관한 언어적 환유가 상당하다. 러시아 소설을 보면 주인공의 이름이 굉장히 여러 가지로 나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라 그런가 그런 비슷한 방식으로 이름들이 쓰여진다. 또한 인물들이 겪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그로 인해 바뀌어나가는 이름들, 언어들에 대한 사유가 상당하다.
모든것이 녹는다. 어머니의 지하 깊숙한 건축물 마저도.
기억되지 않은 것만이 끝까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_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