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도시
차이나 미에빌 지음, 김창규 옮김 / 아작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은 현실의 한국과 북한처럼 한 나라였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분리되어 제각기의 나라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울코마와 베셀, 그리고 틈새에 자리한 '침범국'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울코마와 베셀의 공간 분리가 분명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해가 잘 가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는 아마 독자인 내가 남한의, 그리고 남한의 지역 중에서도 남쪽 지역에 살았던 사적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에서는 분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국경이 바뀌기도 한다지 않은가.  


 남한 지역 중 전방에 속하는 지역들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소설 속 울코마와 베셀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베셀이, 혹은 울코마가 보인다. 그곳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곳의 건물이, 풍경이 보인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국경이 갈리기도 한다. 울코마와 베셀은 불분명한 분리 상태에 대응하여 그들 간의 법을 만들었는데 가장 중요히 여겨지는 것은 서로 간의 '침범' 행위를 불허한다는 것이다. 울코마인은 베셀의 사람과 풍경을 보지 않으며 베셀의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보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느껴서도 안된다. 이러한 행위가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런 법을 지킨다.  


 울코마와 베셀의 분리를 더욱더 공고히 하는 존재는 '침범국'이다. 어디에 존재하는 지 알 수 없고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양국 사이에 '침범' 행위가 일어났을 때 외부 권력이자 초월적 권력으로 모든 사태를 해결하고 책임을 무는 '침범국'. 침범국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그 어디에도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형체 없는 유령이지만 그 힘만큼은 강대하며 울코마와 베셀의 양국 사람들은 침범국을 두려워하면서 복종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티아도어 볼루는 베셀의 형사로 순경인 코위와 함께 베셀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플라나' 사건을 조사한다. 시체의 신원을 알게 된 뒤 사건의 배경을 파헤치던 볼루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해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체는 베셀에서 발견되었으나 사건은 울코마와 관련이 있다. '침범'과 관련한 사건이지만 침범 행위를 증명할 수 없다. 볼루는 베셀의 형사로서 울코마로 넘어가 사건 자문이 되었다가, 종래에는 이름만으로도 공포를 갖는 침범국에 발을 걸치게 된다. 


 죽은 플라나, 아니 바이엘라 마르, 아니 사실은 마할리아 기어리가 연구했던 전설의 '오르시니'는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대한 축으로 작용한다. 점차 진실에 다가서는 볼루의 뒤를 따라 현실의 베셀과 울코마, 전설의 오르시니와 그림자와 같은 침범국의 대립각이 첨예하게 그려진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결말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작가인 차이나 미에빌이 그려낸 이 거대한 세계관은 정밀하게 작동하는 기계와 같다. 그리고 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동력은 '존재감'이다.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 물리적 형태를 띄고 있지 않으나 엄연한 힘을 발현하는 것.


 『이중도시』는 <LA. 타임스>로부터 "필립 K. 딕과 레이먼드 챈들러가 사랑으로 낳은 아이를 프란츠 카프카가 길렀다고 생각해보라. 차이나 미에빌의 소설 <이중도시>가 바로 그 아이와 닮았을 것이다."라는 평을 들은 소설이다. 


 독자로서 이 작품을 좀 더 빨리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소설은 보통 작품에 따라 인물, 사건, 세계관 중 하나가 더 크기 마련이다. 인물이 매력적이어서, 사건 자체가 흥미로워서, 세계관이 특별해서 읽게 된다. 『이중도시』는 인물, 사건, 세계관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소설이다. 여유를 가지고 활자를 따라가다 보면 잘 짜여진 세계관이 주는 안정감과 등장인물들이 어우러지며 선보이는 하모니, 주인공을 따라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는 사건이 주는 속도감에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 일단 얼마만에 서평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11월, 생활의 전반적인 것들이 바뀌었다. 직장에 들어가게 됐고 이래저래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책 한 권 읽는 일도 여의치 않다. 『이중도시』의 서평은 그런 와중에서 조금씩 조금씩 읽어 마친 책에 대한 감상이다.


-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작 출판사의 책을 좋아해 그곳에서 나온 책은 거진 다 구매한 것 같다. 대체로 차례대로 구매하게 되지만 어느 순간을 놓치면 사지 않게 된다. 내가 알기로 아작의 책은 여태까지 20권의 책이 나왔고 나름 표지 기준으로 열 권씩 묶어 시즌1과 시즌2로 구분하는데 나는 (2016년 12월 19일 기준) 시즌1 조 월튼의『타인들 속에서』를 빼고 전부 구매했다. 


-『이중도시』는 구매의 순간을 놓쳐 출간된지 1년이 넘게 지나 구매하게 된 책이다. 구매하고도 아직 읽지 못한 책으로는 제임스 S.A. 코리『익스팬스』, 할 클레멘트 『중력의 임무』, 아작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한국 SF 소설의 첫 권인 김창규의 『우리가 추방된 세계』가 있다. 그러니까 조 월튼의 『타인들 속에서』를 포함해 네 작품을 빼고는 전부 읽었다는 이야기다. 

#이만하면_아작_마니아  


-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 '오르시니'의 존재의 근거가 되는 이합기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합기와 오르시니, 고고학과 연구자들의 이야기가 스핀오프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면 볼루와 침범국의 다음 이야기가 나와 준다거나 울코마의 다트와 베셀의 코위가 또다른 사건을 맞닥뜨려 벌이게 되는 이야기가 나와줘도 좋을 것 같다. 세계관이 탄탄하니 좀 더 꺼내줬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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