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아작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케이트 윌헬름(Kate Wilhelm)의 소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원제 : Where Late the Sweet Birds Sang)는 1976년 발표된 공상과학 소설이다. 1977년 휴고 상과 로커스 상을 수상키도 했다. 세 개의 파트와 짤막한 에필로그로 이루어졌으며 포스트 홀로코스트로 그 장르를 분류해 볼 수 있다. 소설의 소재인 생태계적 멸망이라던가 인간 복제는 공상과학 소설에서 꽤나 흔한 클리셰이지만 세계를 덮친 재난에 대한 이야기보다 멸망해가는 세계, 그 속을 살아가는 세대의 이야기, 세대 속 개인이 갖는 감정들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지점을 갖는다.  

 1부는 점차 붕괴해가는 생태계와 그를 대비하는 데이비드와 그의 가족들(사돈에 팔촌까지 대가족을 이루는), 세계의 멸망 앞에서 어떻게든 사랑을 지키고 싶었던 데이비드와 셀리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부는 인류의 생존을 잇기 위해 데이비드와 월트 등이 만들어낸 클론 세대들의 삶의 모습과 클론으로 나고 자랐으나 클론이 아니게 된 두 사람, 몰리와 벤의 사랑이야기가 이어지고, 3부에서는 몰리와 벤의 유성 생식으로 태어난 아이 마크가 클론 사회에 섞여들어가 반목하고 그들의 삶에서 스스로를 자유케 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케이트 윌헬름의 비극적인 세계관은 근미래에 고스란히 실현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며 가능적인 세계이다. 동식물들이 생식을 멈추고 인간 조차도 불임하는 시대, 그것은 질병이나 유전적 결함으로 나타나지만 기실 인류를 원인으로 하여 만들어진 질병이다. 또한 데이비드 세대들이 그들의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인간 복제는 현재로서도 충분히 유효한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복제된 클론들이 원 세대들을 압도해 골짜기의 주도 세력이 된 이후의 삶 역시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들은 같은 세포를 가진 이들끼리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분류하며 언어뿐만 아니라 그들 자매간, 형제간에 공유되는 감정으로 소통한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추우면 닭살이 돋고 더우면 땀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소통체계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롯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존재할 수 없으며 가문처럼 기능하는 형제(자매)의 틀 안에서 여럿이되 하나이며 하나이되 여럿인 존재로 역할 지어진다. 그렇기에 그들은 외로움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클론 사회는 단순 배양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들은 인공수정으로 사람의 수를 늘리고 혹은 통제하는데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씨받이' 역할을 하는 여성 객체들이다. 그녀들의 역할을 말 그대로 골짜기의 형제 혹은 자매들의 유전자를 받아 자궁을 빌려주고 출산을 대행하는 것인데 이는 그들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성을 띈 채 기능한다. 한때는 같은 형제자매였음에도 씨받이가 되면 그들 무리에서 퇴출당하고 마는 것이다. 

 씨받이들은 사회 안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병동에 갇혀 의사들과 간호사들, 씨받이들 서로만을 만날 수 있다. 낮에는 간단한 노동을 하고 혹은 약물에 취한다. 임신이 될 때 까지 수정을 시도당한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것이 당연한 삶이다. 씨받이가 된 이후 그렇게 조정되어졌기 때문이다. 약물 혹은 유전자로 인간을 맘대로 조정시킬 수 있는 미래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러한 씨받이들의 존재는 평등할 것만 같았던 클론 사회에 숨겨진 계급의 일환으로 기능한다.   

 클론 사회를 보면 굉장히 획일화 되어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그들이 원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누구는 의학적인 분야에 재능을, 누구는 한 번 본 것을 고스란히 따라 그릴 수 있는 재능을, 누군가는 조선을, 누군가는 농사를 한다.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학교에 맡겨 차이를 두지 않으며 섹스를 하되 난교의 형태로, 그러나 놀이의 의미로 나눈다. A 유전자 형제들과 B 유전자 자매들간의 유대를 다지는 단체 놀이에 불과한 것이다. 즉 동일 유전자를 지닌 형제, 혹은 자매들의 획일화가 엿보이며,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어긋나는 모습을 띄면 가차 없이 무리에서 추방된다. 말 그대로 골짜기에서 쫓겨나거나 씨받이가 되거나 무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간주되어 격리처리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몰리나 벤, 후에 등장하게 되는 마크의 존재는 이질적인 것이다. 폐허가 된 도시를 탐험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개인이 되었고, 더이상 형제자매들과 일치된 존재일 수 없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몰리와 벤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다. 스스로 개인의 자리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위험인자로 분류된 벤이 형제들에 의해 골짜기를 떠나게 되고 마찬가지로 위험인자로 분류되어 섬너 가의 낡은 저택에 감금당했던 몰리가 벤의 아이인 마크를 낳았을 때 마크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클론과 클론의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지점에서부터 몰리와 벤이 마크에게 물려준 재능, 다른 클론들과 다르게 형제자매 속에 소속된 존재가 아닌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개인이라는 점에서 마크는 특별해진다. 

남과 다른 존재인 마크가 클론 사회에서 적응치 못해 벌이는 일들, 마크를 받아들이면서 변화된 인식을 선보이는 베리, 미리암, 앤드루의 모습들은 제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클론들의 사회는 가능성을 멈춘다. 그 누구도 창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크는 그를 먼저 알았고 무너지는 피라미드에서 빠져나가기로 마음먹는다. 베리와 미리암은 마크와 그들의 공동체를 대하는 면에서 의견을 달리하지만 그들은 몰리의 두상 조각을 보며 남다른 감정들을 되새긴다. 

 마크가 스스로 골짜기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가 후에 만들어가는 공동체는 오히려 원 세대의 그것에 더 가깝다. 3부의 뒤를 잇는 에필로그에 짤막한 분량으로 서술된 마크의 공동체는 멸망으로부터 비껴난 희망을 노래하며 "과거의 재창조나 정교한 미래 설계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을 암시한다. 외로움을 알고, 외로움을 채우며, 그렇게 서로 다르게, 오롯하게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케 한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생태계 붕괴와 세계의 멸망, 인간 복제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소규모 공동체 사회가 보여주는 정치성, 과학기술이 필연적으로 갖는 발전적 가능성과 한계성 등 현대인들이 품을 수 있는 수많은 시의적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던지고 있다. 인물들의 관계성은 세계관 전체를 아우르는 큰 축이며 사랑과 우정 등의 감정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된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화법이 날카롭지 않은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세계의 붕괴'라는 비극적 세계관, 인간 복제라는 클리셰적 소재를 서정적이면서 아름다운 노래로 흥얼거리게 한다. 결코 스펙타클하지 않다. 다만 잔잔하게, 독자에게로 젖어 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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