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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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작가 하면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와 '카렐 차페크'를 떠올렸던 내게 '보후밀 흐라발'이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보후밀 흐라발'은 낯선 작가일 것이다. 

 보후밀 흐라발(1914.3.28~1997.2.3)은 밀란 쿤데라로부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체코 최고의 작가"라는 평을 들었으며, 체코에서만도 삼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세계 30여개국에 번역 출간된 작가이다. 필립 로스는 그를 "현대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하나"라고 이야기 했으며, 영국의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보후밀 흐라발은 폭발적인 유머와 고요하면서도 부드러운 디테일을 지닌, 가장 세련된 소설가다. 우리는 흐라발을 읽어야 한다."라고 칭찬키도 했다. 즉 보후밀 흐라발은 이제야 한국에 알려진 것이 이상할 정도로 대단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던 폐지 압축공 한탸의 이야기를 그린 길지 않은 소설이다. 한탸는 그저 폐지를 압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끊임없이 독서하고 사유하며 교양과 지식을 쌓아나간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늙은 한탸가 되새기고 혹은 꿈꾸는 무수한 몽상들이다. 책과 폐지로 가득찬 지하 작업공간과 2톤의 책이 쌓인 그의 방을 배경으로 그는 훗날 그의 압축기를 가지고 은퇴 뒤의 삶을 꿈꾸기도 하고 첫사랑이었던 만차를 떠올리거나, 그를 스쳐 지나간 어린 집시 여자를 그리기도 한다. 

 한탸의 가족들은 부재하고 부재케 되며(외삼촌의 죽음) 소장은 늘 그더러 일을 좀 하라고 울부짖거나 사정한다. 한탸는 지하실과 집만을 오고가지만 가끔은 외삼촌을 방문하거나 맥주를 마시러 펍에 들르기도 한다. 한탸가 일한 삼십오 년만큼 한탸를 지킨 나이든 압축기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폐지를 압축한다. 한탸는 혼자이나 혼자가 아니며 한탸의 공간은 그럼으로 더욱 고독하다. 한탸의 노동은 매일매일 그 모습이 다르지 않고 한탸의 고뇌는 괴테와 탈무드, 예수와 노자 등을 빌리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한탸의 곁을 지키는 건 시궁쥐와 푸른 등을 가진 파리들 뿐이다.     

 소설 속에서 그려진 한탸의 세계는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몽환적이다. 주로 한탸의 몽상이 소설 전체를 이끄는 주축이기 때문에 현실에 뿌리 내린 리얼리즘적인 묘사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현실반영적인 이유는 몽상 틈틈이 엿보이는 장면장면 때문이다. 부브니에 등장한 거대한 신식 압축기와 그 압축기를 다루며 일하는 (한탸가 일하는 방식과 너무도 다른 사고방식의) 사회주의 젊은 청년들도 그러하며, 한탸의 곁에 머무르다 어느 순간 사라진 어린 집시 여자가 실은 한탸를 떠난 것이 아니라 게슈타포에 의해 끌려갔다는 사실도 그러하다. 

 즉 해석하기로, 그 누구와도 제대로 된 관계맺음을 하지 않은 채 폐지와 헌책들에 열중하는 한탸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나치 치하의 불안한 현실 사회를 스스로에게서 배제시키고자 했던 무의식의 발현으로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밟지는 않았으나 고전이나 철학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깊은 인물인 한탸는 은거한 지식인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는 현실사회와 유리되려는 은거한 지식인으로 정의해볼 수도 있다. 

 한탸의 말로 또한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텐데, 거대한 압축기와 청년 일꾼들의 등장으로 폐지를 압축하는 일에서 밀려난 한탸가 자신의 압축기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장면은 자신이 생을 살아감으로 유일하게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일이 타인으로 인해 배제되었을 때, 스스로 그가 사랑했던 일의 일부가 되길 원하는 욕망을 비추어내고 있다.

 보흐밀 후라발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반어적 제목과 한탸라는 교육받지 못했지만 지적이고, 삶의 비천한 가운데 위치했지만 누구보다도 고결한 인물을 내세워 시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고요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소설을 만들어 냈다. 길지 않은 소설이니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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