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주문하고 배송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거다!"였다. 조안나 러스를 포함해 총 15작가의 단편이 실려 있으므로 다양한 브랜드의 초컬릿이 모여 담긴 선물 상자를 받은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알고 있던 작가보다 알고 있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량 실려 있었고 SF를 이제 막 사랑하기 시작한 독자로서 알지 못해서 읽지 못해온 작가들이 많았던 터라 뭔가 새로운 발견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또한 뒤표지에 실린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SF 소설계에 페미니즘 르네상스를 이끌어온 전 세계 여성 작가"의 작품들을 그러모았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출간은 사회적으로 비추어봤을 때도 시의적인 성격을 띈다. 일전 와우북에서 진행된 포럼 <젠더 문제를 말하는 SF의 방식>에서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SF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소수자를 위한 문학적 성격이 짙고, 소수자의 자리에 있는 '여성' 작가, 그리고 그들이 쓴 페미니즘 SF 소설들의 출간이라는 점에서도 가치 있는 책이다. 



 반다나 싱,「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결혼 생활에 의문을 갖게 된 아내의 변화 양상이 무척 인상 깊었다. 또한 그녀가 지구의 중력을 반대하며 하늘을 오를 때 어떠한 사회적 제도나 관습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대리경험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수전 팰위크,「늑대여자」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판타지적 웨어울프의 개념을 순식간에 뒤흔든 소설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말 그대로 인간과 늑대의 생을 동시에 사는 인물이다. 정신적인 나이와 육체의 나이 마저도 늑대의 생과 비례한다. 그녀가 인간 남자 조너선을 사랑해 희생하고 포기해온 모든 것들, 그리고 행복했던 일상이 점차 무너져 가는 모습들은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생애에 발맞춰 걸어왔던 사연들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말 또한 마음을 저리게 한다.     



 조안나 러스,「그들이 돌아온다 해도」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제목에서 '그들'로 지칭되어진 남성들의 등장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충분히 안정되어 있던 여성 사회에 침입하다시피 등장한 남성들,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진 사회만이 정의라는 그들의 의식, 남성 위주의 사회적 인식들을 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잘 보여진다.   



 캐롤 엠쉬윌러,「애들」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 자궁으로만 한정한 채 여성의 마을, 남성의 마을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배경이다. 이곳의 남성들은 각기의 마을을 적으로 산정한채 늘 전쟁중이며, 어머니 마을에 방문해 아이를 출산 시키고 남아들을 납치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성 역할 구분은 마치 인간을 용도에 따라 나누고 있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결론을 보게 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에일린 건,「중간관리자를 위한 안정화 전략」


 생물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 인간들은 여전히 사회구조를 간직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생물공학적으로 개조한다. 특히 이 소설에서 특이하게 보여지는 점은 기업문화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지점이다. 주인공인 여성이 기업문화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거치는 과정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카린 티드베크,「숙모들」


 '오렌지 온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거대한 육체를 지닌 세 숙모들과 세 소녀들 사이를 잇는 의식과 전승의 과정이 환상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켈리 에스크리지,「그리고 살로메는 춤을 추었다」

 

 헤로데와 살로메, 요한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려는 마스에게 독특한 배우 조가 오디션을 보러 온다. 요한 역에 지원했던 조는 요한이 아닌 살로메로 무대에 서게 된다. 조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며 젠더적인 구분만 흔드는 것이 아니라 마스의 인생 마저 뒤흔든다. 무대 밖과 무대 안, 젠더의 이분법적 구분 안과 구분 밖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앙헬리카 고로디스체르,「완벽한 유부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완벽해 보였던 어느 주부에게서 엿보는 그녀만의 자유로운 이중생활. 그녀에게서 보이는 이편과 저편의 간극이 흥미롭다. 



 안네 리히터,「식물의 잠」

 

 식물처럼 살길 원했던 여자가 정말 식물이 되는 이야기. 식물이 되고 싶었던 인간에서, 식충식물, 오롯한 식물이 되어가는 과정과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남들만큼만 사는 삶을 벗어나 오롯하게 자기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을 이뤄낸 여자는 '숨 막히게 멋진 꽃'을 피워낸다.



 히로미 고토,「가슴 이야기」


 신생아를 기르는 부부의 이야기다. 모유수유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종래에 가슴을 도려내 남편에게 이식하는 상상력은 원색적이면서도 날 것의 느낌을 준다. 동아시아 전역을 휘감는 모유수유에 대한 신기할 정도의 믿음과 여성으로 하여금 엄마로서의 역할을 당연시하는 사회상에 대해 날을 세운 시선으로 비추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팻 머피,「무척추동물의 사랑과 성」

 

 동물 세계에서의 성욕과 역할, 로봇 동물 한 쌍과 그들을 관찰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연애와 임신, 출산의 문제를 동물학적으로 비교하며 접근한다. 주인공의 세계는 허공이 붕 떠있는 것 같은 회색이다.   



 어슐러 K. 르귄,「정복하지 않은 사람들」


 아문센보다 먼저 남극을 탐험했던 여성 탐사대의 이야기로 초기 남극 탐험에 대한 보고, 회고 형식을 띄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의 가혹함을 이겨내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간간이 등장하는 남성들이 실망할지도 모르니 이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된다, 라는 언급들이 등장한다. 읽는 내내 그 부분을 보고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캐서린 M. 밸런트,「시공간을 보는 열세 가지 방법」


 성서에 등장하는 창세신화를 과학적요소로 융합해 새로운 신화를 탄생시켰다. 이 신화는 SF 작가인 여성이 태어나고 결혼과 이혼을 하고 제 심장을 심연에 던져버리는 서사와 맞물려 상호 조응한다.  



 파멜라 사전트,「공포」


 극단적인 남성지배 사회 속에서 몸을 숨긴 채 살아가는 어떤 여성의 외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을 찾기도 드물 뿐 더러 그 존재 자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화가 된 세상을 그리며 성별의 균형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 남성들 사이에서도 트랜스한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들로의 구분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물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멸과 혐오, 혹은 소유의 정서 등도 양지의 것이 되어 있다. 외출한 동안 자신이 여성임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조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엘리자베스 보나뷔르,「바닷가 집」


 인간과 인간형 인공물이 존재하며 과학적 기술이 무척이나 발달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인공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출했던 여성 마노우가 창조자이자 어머니인 타이코에게로 귀향하는 과정을 그린다. 자신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마노우였지만 다시 만난 타이코와의 대화를 통해 화해를 하게 된다. 둘의 관계는 유사 모계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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