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86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타이핑을 하고 있는 지금도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 지 모를 만큼, 어느 순간 시집 독서는 굉장히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이장욱의 글은 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시도, 소설도, 비평도, 번역도 단 한 번도 실망이라는 감정을 안겨준 적이 없다. 이장욱의 네번째 시집인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입에 굴릴 때마다 정말 그 답다는 생각을 곱씹게 했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이장욱은 "태어난 뒤에 일관성을"(「일관된 생애」)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런 일관성을 지닌 것 같다. 그의 문학에 대한 성실함, 삶에 대한 치열함은 어떠한 일관된 맥락으로 글 속에 드러난다. 


 나는 이번 시집에 대하여 "가능하지 않아서 영원한"이라는 부제를 달아보았다. 시집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정서가 그와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다 "매우 견고한 침묵을 갖게"된 이가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얼음처럼」) 녹아버리는 지점은 세계에 대한 사랑도 완성형이 아니며 견고한 침묵은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아침이 가능한 것은 영원이 아니라서고 그래서 화자는 녹아버린다. 나는 이런 모습이 오히려 영원해보였다. 


 아침이 아침일 수 있는 이유는 하루의 모든 시간이 아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은 지구에 움직임에 따라 자리를 달리하고 그런 태양의 영향으로 아침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된다. 무르익은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온다. 이처럼 영원하지 않은 아침 때문에 아침은 아침이 될 수 있다. 영원함이 가능하지 않아서 오히려 영원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얼음이 얼음일 수 있는 건 녹을 수 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이같은 영원, 즉 완성을 미루고 미루어 영원함을 획득하는 심상은 많은 시들에 들어나 있는데 「기린과 /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의 / 사이에서」를 보아도 그러하다. 화자인 나가 꺼낸 "목이 긴 기린"은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은 채 "도시의 골목" ,"기린과 /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의 / 사이를" 거닌다. 가만히 섰던 나는 또다시 "당신"에 의해 꺼내어져 "내가 아닌 모든 것과 / 나의 / 명백한 사이에서" 아마도, 거닐 것이다. 


 당신과 나와 목이 긴 기린은 교묘한 삼위일체를 이룬다. 분리된 듯 분리되지 않은 관계, 나는 기린이고 당신이며, 기린은 나고 당신이며, 당신은 나고 기린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순환의 구조는 하나의 주체로서의 존재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지 않는 의도적인 구성이다. 그리고 이처럼 선언되지 않는 주체들, 순환을 반복하거나 완결되지 않은 주체들이 시들의 화자로 기능한다. 


 "임종의 얼굴"을 한 "야간근무자"(「야간근무자」)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전화를 건다. "닫혀 있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은 문"처럼 "만났으므로 헤어진 연인"은 "당신을 잊자마자 당신을 이해"(「밤에는 역설」)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러한 역설이 끝을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완결성 없이 지속된다. 완결은 이처럼 가능하지 않기에 영원을 띈다.

 

 어쩌면 이장욱의 문학도 그와 같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문학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길 빈다. 하나의 시, 하나의 소설이 한 권의 책이 되고, 그 뒤를 꼬리 물며 수많은 작품들이 줄을 이었으면 좋겠다. 계속 그의 문학은 넓어지고 깊어져서 그 너비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그의 사유는 나날이 더해져 그이 자신도 스스로의 바닥을 알 수 없었으면 한다. 그는 완성되지 않아야 한다. 완전함이란 것의 불가능성을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