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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사람의 죽음을 날것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직업적인 의사나 소방관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죽음을 물성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직업군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이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경험했던, 혹은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경험들을 가공하여 적어낸 기록물이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어떤 점에 있어서는 팩션의 형질을 띈 가공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작가의 글은 아닌지라 여기저기 성긴 문장들이 많이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잘 읽히게 쓰여진 글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그에 대한 저자의 감상들이 많이 엿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무겁기만 한 글은 아니다. 죽음은 생과 뗄 수 없으므로 어떤 이는 죽음을, 어떤 이는 생을 보장 받는다. 죽음도 생도 보장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저자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준다. 의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생과 사는 환자 개인에 따라 다르게 찾아온다. 최선 그 이후의 순간은 의사의 손을 떠나서 움직이는 것이다.
책으로 묶인 38편의 글에는 저마다 다른 생과 사, 그리고 환자 개인마다 살아온 삶의 궤적들이 겹쳐든다. 저자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하루에만 많게는 삼백명의 환자도 진찰해야 했다. 그것은 마치 타인의 궤적을 한 자리에 앉아 맞이해야만 하는 삶, 직업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메스를 들이대야 하는 삶이다.
우리가 쉽게 바라본 의학 드라마에서는 의사인 주인공이 굵직한 에피소드를 가진 환자를 한 둘 정도 진료하고는 만다. 그래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주인공의 삶은 살아진다. 그러나 실제 의사의 눈으로 본 의사의 삶은 난장 진 전쟁터와 같다. 전쟁터와 같은 응급실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버티게 하려고 필사적이다.
저자가 직접 만져야 했던 생사의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만나야 했던 몇 안되는 죽음들.
나를 스쳐지나간 죽음들은 직접적으로 나를 훑고 지나가진 못했다. 어렸거나 이제야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나 갑작스러웠거나 거리가 있었다.
네 분의 조부모님 중 살아계신 분은 친할머니 한 분이 되었다. 그분들의 죽음은 아프시거나 나이가 드셨었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담담히 맞이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같이 학교를 다녔던 아이 하나가 물놀이를 갔다가 유명을 달리했고, 고등학교 때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 하나가 고 3이 다 되어 학교에서 자살을 했다. 초등학교 때는 그냥 실감이 나지 않았고 고등학교 때는 의문만이 남았다. 며칠 전에도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던 아이였으므로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고 갔을 까 했던 것 같다.
대학생 때도 두 학번 위의 선배 하나가 자살을 했다. 두주 정도 수업엘 나오지 않아 의아했었는데 차를 운전해서 바다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같은 전공 선택 수업을 들었었는데 내게 음료수 캔을 건내며 수줍게 웃던 모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선배의 부모님은 먼저 간 딸이라고 장례식도 소리소문 없이 치렀다. 나는 선배의 얘길 같이 듣던 수업 시간에 들었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는데 미안하고 미안해서 내내 울었다.
대학원 휴학을 했을 때도 같이 수업을 들었었던 선배 하나가 자살을 했다고 했다. 학교에서였고 수업시간에서 였다고 했다. 함께 알던 지인들과 어안벙벙해진채 장례식엘 갔고 다녀와서 따로 모여 술을 마셨고 울었고 욕을 했다. 그랬던 것 같다. 속이 많이 울렁거렸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줄 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대체로 날 스쳐간 죽음들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일들을 맞이하게 될 때마다 마음을 다졌다. 나는 절대로 나의 생을, 나의 사람을 무책임하게 내팽개치지 말아야겠다. 나의 삶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 날까지 이루어 나가고 싶은 꿈들을 다 이룬 꿈들로 바꿀 수 있게 단단히 매듭 지은 삶을 살아야 겠다.
책의 『만약은 없다』는 제목 참 마음에 든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아니, 살아야지. 살아내야지. 버텨내야지.
내일이 올 것 같다. 내일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