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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 ㅣ 프레야 시리즈
매튜 로렌스 지음, 김세경 옮김 / 아작 / 2016년 4월
평점 :
프레야가 정신병원을 탈출한 이유?
북유럽신화의 사랑과 전쟁의 여신으로 그 신화에서는 지극히 중요한 존재인 프레야는 인간들에게 잊혀진 채 한 정신병원에서 새라 버내디란 이름으로 무려 이십 칠년 째 시간을 죽이고 있다. 누가 그녀를 가뒀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정신병원이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은 그녀가 스스로를 신이라 주장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곳이다.
그러던 그녀는 어느 날 새로 정신과에 근무하게 된 남자직원 나단을 만나게 된다. 나단은 외모도 괜찮고 유머감각도 있어서 그녀의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같은 날 그녀는 가렌이란 이름의 면회객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기에 면회를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위협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남자인 가렌은 새라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협력하라고 위협한다. 그는 스스로 ‘아흐리만의 조각’이라 밝힌 물건 하나를 건네면서 말한다. 새라는 그 물건을 만지는 순간 끔찍한 신의 느낌을 받는다. 가렌은 말한다. “우린 신들을 취급해, 새라. 해가 될 만한 신은 잡아 가두거나 없애버리고, 나머지는 채용하는 거지.”
가렌은 신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초인적인 힘을 지닌 사내지만,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그를 떨쳐내고 나단을 들춰 매고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운전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신인 그녀는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화학약물들의 작용에 간섭할 수 있다(그 전에는 자신이 무엇에 대해 간섭하고 있는지를 몰랐지만 이제는 정신과에서 충분히 들었다). 그녀는 나단이 자신의 존재를 믿게 만들고, 나단을 자신의 여행의 동료로 맞아들인다. 옛날 말로 한다면 나단은 ‘신관’이 된 것이다. 가렌의 조직으로부터 도망을 치면서 그동안 눈에 띄게 변한 세상에 대해 탐구하는 새라,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한 인터넷이 충격적이다.
디즈니월드에서 신성을 발견한 프레야
“(...) 인류는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하라고, 자신들의 육체와 영혼을 보호하라고 우리를 창조했었다. 그들이 이제 자라, 우리를 마치 오래된 장난감처럼 내팽개쳐버리고, 우리의 후계자를 만든 거다. 더 나쁜 건, 지금까지는 이게 우리보다 훨씬 더 나았다는 거다. (...)”
하지만 여신은 이 인터넷의 세상을 활용해 신들이 활동할 수도 있겠다는 희미한 전망을 품는다. 여신은 도망치기 위해 좋은 곳을 물색하다가 나단의 조언을 받아들여 디즈니월드에서 신데렐라 역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여신은 디즈니월드에 오는 아이들이 프레야가 아닌 신데렐라를 진짜라고 믿어도 자신의 힘이 조금씩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의 소망과 신성 사이엔 그녀의 생각보다도 훨씬 복잡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여신은 그녀가 발견한 것을 먼저 발견하여, 놀이공원을 운영하며 인간의 숭배 없이도 살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찾아낸 위험한 디오니소스 신을 맞닥트린다. 그리고 가렌도 다시 그녀를 쫓아와 신성을 산업화하려는 위험한 기업의 존재를 알린다. 사랑의 여신이지만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 프레야는 이 시점에서 목표를 도주에서 투쟁으로 바꾼다. 신성을 훼손하고 인간을 지배하려는 저 거대기업에게 대항하려는 여신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줄거리 참고를 위해서 아작 블로그 출판사 서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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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작 출판사의 책을 좋아한다. 아작에서 번역 출간한 소설들의 세계는 그저 독자에게 재미만 선사하지 않는다. 코리 닥터로우의『리틀 브라더』는 금방이랄도 다가올 것만 같은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국가 권력과 개인이 부딪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코니 윌리스의 『화재감시원』, 『여왕마저도』에서는 제각기 매력적인 세계관들을 담은 단편들을 담고 있었다. 그중 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건 단편 [여왕마저도]에서 등장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월경 없는 세상이었다.
어찌 보면 아작 출판사의 책들은 하나의 경향성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그건 바로 '여성'에 대한, '페미니즘'에 대한,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읽은 아작의 네번째 책 소설『정신병원을 탈출한 프레야』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을 먼저 샀지만 나중에 이야기 해야 할 거 같다.) 일단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우리에게 익히 익숙한 히어로물을 떠올려보라. DC의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 MARVEL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 위도우, 스파이더맨 등등. 그러나 우리가 한국에서 소요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남성 히어로 중심의 서사였고 여성 히어로들은 조력자이거나 보조자일 수밖에 없었다. 근래 『헝거게임』의 캣니스가 큰 활약을 하긴 했지만 결국 그녀도 반란을 승리로 이끈 후에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가정에 안주 하고 말지 않는가.
『정신병원을 탈출한 프레야』는 다르다. 잊혀진 여신이었던 프레야가 피넴디의 손길을 피해 도망을 쳐야 했을 때부터 그녀의 행보는 주체적이다. 그녀에 의해 사건에 휘말리게 된 나단은 그저 그녀의 사제, 조력자에 불과하다.
도주 과정에서 모든 금전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것도 프레야이고(나단은 가사를 책임진다) 피넴디에 잡혀들어갔을 때 다른 여신들을 설득해 조력자를 만드는 것도, 피넴디의 구조를 파헤치는 것도, 가렌과 드래스를 물리치는 것도 모두 프레야의 힘이고 프레야의 노력이다.
프레야와 그녀의 친구들이 임펄스 본부를 무너뜨리고 있는 동안 나단이 한 것은 디오니소스의 덩쿨에 묶여있거나 환호를 지르거나 가렌의 총구에 겨눠질 뿐이며 탈출 후에는 네 명의 여신들과 어떻게 한 집에서 지내야 할 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만약 다른 히어로 물이라거나 라이트 노벨이었다면 어땠을까. 프레야는 나단의 조력자가 되어 악을 물리치고 다른 네 여신들과 나단을 사이에 두고 하렘 구도를 형성하고, 나단은 힘을 갖춰 먼치킨 캐릭터가 되었을까?
다른 것은 상상하지 않겠다. 프레야와 친구들에겐 피넴디 본진과의 전투도 남았고 부활한 것으로 예상되는 악마 아펩과도 부딪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툴레즈와 디오니소스 커플과 충돌이 있을지도 모르고 엄마의 모습을 한 아펩 때문에 그들의 조력자였던 사만다와 다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레야 시리즈는 이제 시작이고 프레야와 그 친구들의 모험의 항로는 아직도 멀다.
내 이름은 새라 버내디, 마침내 다시 신이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