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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여름, 트위터 이벤트로 받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정의라는 단어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했으리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었다. 다양한 사례와 무수히 많은 철학자와 문헌을 토대로 하여 독자 스스로 정의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왜 도덕인가?]의 출간 소식을 듣고 일단 주문을 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기대는 대략 두가지였다.
우선,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의 그 재미, 인문서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었다. 도덕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다음으로는 생각할 거리를 얼마나 만들어줄까 하는 기대였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단순히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고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페이지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고,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던 기억이 났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받은 느낌은 조금 복잡하다.
우선 정의를 이야기하는 그 느낌 그대로 도덕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마치 한 권의 책을 둘로 분리해 놓은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책을 집어 들었음에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익숙하다는 기분이었고 따라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을 주고 구입한 책이 마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 아쉽기도 했다.
이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아래‘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하여’ 라는 부제가 붙은 첫 번째 파트는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라는 현대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로 도덕을 이야기한다.
복권과 같은 합법적 사행성 게임과 매춘과 같은 비합법적 상행위에 대해 논하기도 하고, 환경오염을 비롯한 사회적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들, 교육 현장이 지독한 상업공간으로 변해가는 문제 등을 다룬다. 물론 종교 부분에서는 낙태, 배아복제 등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정치에서의 가치도 이야기한다.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두 번째 파트에서는 옳음과 좋음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도덕을 이야기한다. 도덕에 대한 철학자들의 정의와 개인과 집단에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와 같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를 논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파트는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다’라는 제목 아래에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자유’라는 부제를 달았다.
여기에서는 시민의식, 거대자본과 정부간의 딜레마를 거쳐서 공동체에 대한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도덕을 배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도덕은 신호등을 잘 지키자 거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라, 인사를 잘 하자는, 일종의 공공예절과 법규 준수를 이야기하는 과목이었다.
시험을 치를 때도 사지선다의 보기에서 가장 고리타분하거나 내가 평소에 지키지 않던 내용, 또는 지키면 내가 가장 손해를 볼 것이 뻔한 그런 답을 고르면 대부분 맞았다.
당연히 도덕 과목은 실생활에서는 절대 지키지 않거나 행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만일 도덕 과목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같은 반 동료들은 경쟁 상대이고, 선생님은 시험문제를 잘 풀 수 있도록 요령을 알려주는 사람이며 공부의 최종목적은 취직해서 돈 잘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곳이 아니다. 누구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정이 있고, 아파할 수 있으며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동성애에 관한 법률적 판단에 관한 내용이었다.
동성애자는 항문성교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에는 이성 간에는 그런 행위가 절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상적인 가정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반한다는 의견에는 행복에 대한 가치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반박하며, 2세를 낳아야 한다는 말에는 이성애자간의 결합에도 불구하고 불임인 경우도 있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임신을 피하기도 하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사실 역사 이래로 인간 사회에서는 언제나 소수의 동성애자가 있어왔다는 것만 보더라도 쉽게 비도덕적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이와 같이 상식적이라고 판단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그로 인해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대상이 있음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어떤 문제가 도덕적인가 아닌가, 혹은 상식적인 판단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위치와 상태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그 문제를 고민해서 나오는 결정이 최선이라고 말이다.
내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사업가인지 월급쟁이인지 혹은 실업자이거나 부랑자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등등...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은 대체로 상대적 약자를 위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옳다고 말한다.
마이클 샌델의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최소한 책을 읽는 그 시간동안만큼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 도덕적인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정의와 도덕이 빠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왜 도덕인가?]는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교할 때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정의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언급되고, 내용도 서로 겹치거나 비슷한 부분도 많이 보인다.
마이클 샌델의 두 저서가 이토록 주목을 끄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모든 것이 숫자, 그것도 화폐라는 단위의 숫자로만 평가받고 오직 부(富) 하나만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세상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거치며 급격하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서구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가치는 모두 사라졌으며 청빈이라는 선비정신도 실종되어 버렸다.
한복을 입는 것은 희한한 일이 되어버렸고, 우리의 모든 과거 역사는 반시대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
만일 일제시대를 겪지 않고 현대사회까지 이어졌다면 적어도한복 입는 것이 희한한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부여한 가치가 모조리 소각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2011년 현재, 우리는 정의와 도덕이라는 인간 사회의 기본 가치조차 서양에서 수입해야 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것이 못내 아쉽고 슬프다.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돌아볼만한 문구를 소개하고 싶다.
우선, 경제중심의 사회가 낳은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경제중심의 사회가 낳은 폐해는 심각하다. 도덕적 해이와 거짓말, 각종 로비와 공직자의 부패, 경제인의 각종 특혜와 비윤리적인 이권개입, 일반 시민의 도덕 불감증 등 경제논리에 가려 어느 정도의 비도덕은 묵인할 수 있다는 근거가 빈약한 관용이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어떤가? 2011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 아닌가?
다음으로는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고객과 달리 국민은 때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공공기관에서조차 국민들을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현실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가를 생각해볼 부분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공공의 도덕성 부재가 어떤 현상을 만드는가에 관한 것이다.
환멸은 더욱 세속적인 형태를 띤다. 공공 문제의 도덕적 차원을 다루는 정치적 이슈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중의 관심은 공직자들의 개인적 비리에 집중된다. 공공 담론은 점점 더 타블로이드와 토크쇼, 결국엔 주류 언론까지 합세해 스캔들과 센세이션, 고백에 사로잡힌다.
언론에서 가장 많이 보게되는 기사가 무엇이더라? 특히 대통령이 누군가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꼭 벌어지는 사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