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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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트위터 이벤트로 받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정의라는 단어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했으리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었다. 다양한 사례와 무수히 많은 철학자와 문헌을 토대로 하여 독자 스스로 정의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왜 도덕인가?]의 출간 소식을 듣고 일단 주문을 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기대는 대략 두가지였다.

우선,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의 그 재미, 인문서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었다. 도덕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다음으로는 생각할 거리를 얼마나 만들어줄까 하는 기대였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단순히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고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페이지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고,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던 기억이 났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받은 느낌은 조금 복잡하다.
우선 정의를 이야기하는 그 느낌 그대로 도덕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마치 한 권의 책을 둘로 분리해 놓은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책을 집어 들었음에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익숙하다는 기분이었고 따라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을 주고 구입한 책이 마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 아쉽기도 했다.

이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아래‘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하여’ 라는 부제가 붙은 첫 번째 파트는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라는 현대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로 도덕을 이야기한다.

복권과 같은 합법적 사행성 게임과 매춘과 같은 비합법적 상행위에 대해 논하기도 하고, 환경오염을 비롯한 사회적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들, 교육 현장이 지독한 상업공간으로 변해가는 문제 등을 다룬다. 물론 종교 부분에서는 낙태, 배아복제 등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정치에서의 가치도 이야기한다.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두 번째 파트에서는 옳음좋음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도덕을 이야기한다. 도덕에 대한 철학자들의 정의와 개인과 집단에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와 같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를 논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파트는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다’라는 제목 아래에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자유’라는 부제를 달았다.

여기에서는 시민의식, 거대자본과 정부간의 딜레마를 거쳐서 공동체에 대한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도덕을 배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도덕은 신호등을 잘 지키자 거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라, 인사를 잘 하자는, 일종의 공공예절과 법규 준수를 이야기하는 과목이었다.
시험을 치를 때도 사지선다의 보기에서 가장 고리타분하거나 내가 평소에 지키지 않던 내용, 또는 지키면 내가 가장 손해를 볼 것이 뻔한 그런 답을 고르면 대부분 맞았다.
당연히 도덕 과목은 실생활에서는 절대 지키지 않거나 행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만일 도덕 과목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같은 반 동료들은 경쟁 상대이고, 선생님은 시험문제를 잘 풀 수 있도록 요령을 알려주는 사람이며 공부의 최종목적은 취직해서 돈 잘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곳이 아니다. 누구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정이 있고, 아파할 수 있으며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동성애에 관한 법률적 판단에 관한 내용이었다.
동성애자는 항문성교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에는 이성 간에는 그런 행위가 절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상적인 가정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반한다는 의견에는 행복에 대한 가치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반박하며, 2세를 낳아야 한다는 말에는 이성애자간의 결합에도 불구하고 불임인 경우도 있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임신을 피하기도 하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사실 역사 이래로 인간 사회에서는 언제나 소수의 동성애자가 있어왔다는 것만 보더라도 쉽게 비도덕적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이와 같이 상식적이라고 판단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그로 인해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대상이 있음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어떤 문제가 도덕적인가 아닌가, 혹은 상식적인 판단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위치와 상태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그 문제를 고민해서 나오는 결정이 최선이라고 말이다.
내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사업가인지 월급쟁이인지 혹은 실업자이거나 부랑자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등등...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은 대체로 상대적 약자를 위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옳다고 말한다.

마이클 샌델의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최소한 책을 읽는 그 시간동안만큼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 도덕적인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정의도덕이 빠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왜 도덕인가?]는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교할 때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정의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언급되고, 내용도 서로 겹치거나 비슷한 부분도 많이 보인다.

마이클 샌델의 두 저서가 이토록 주목을 끄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모든 것이 숫자, 그것도 화폐라는 단위의 숫자로만 평가받고 오직 부(富) 하나만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세상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거치며 급격하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서구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가치는 모두 사라졌으며 청빈이라는 선비정신도 실종되어 버렸다.
한복을 입는 것은 희한한 일이 되어버렸고, 우리의 모든 과거 역사는 반시대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
만일 일제시대를 겪지 않고 현대사회까지 이어졌다면 적어도한복 입는 것이 희한한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부여한 가치가 모조리 소각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2011년 현재, 우리는 정의도덕이라는 인간 사회의 기본 가치조차 서양에서 수입해야 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것이 못내 아쉽고 슬프다.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돌아볼만한 문구를 소개하고 싶다.
우선, 경제중심의 사회가 낳은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경제중심의 사회가 낳은 폐해는 심각하다. 도덕적 해이와 거짓말, 각종 로비와 공직자의 부패, 경제인의 각종 특혜와 비윤리적인 이권개입, 일반 시민의 도덕 불감증 등 경제논리에 가려 어느 정도의 비도덕은 묵인할 수 있다는 근거가 빈약한 관용이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어떤가? 2011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 아닌가?

다음으로는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고객과 달리 국민은 때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공공기관에서조차 국민들을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현실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가를 생각해볼 부분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공공의 도덕성 부재가 어떤 현상을 만드는가에 관한 것이다.

환멸은 더욱 세속적인 형태를 띤다. 공공 문제의 도덕적 차원을 다루는 정치적 이슈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중의 관심은 공직자들의 개인적 비리에 집중된다. 공공 담론은 점점 더 타블로이드와 토크쇼, 결국엔 주류 언론까지 합세해 스캔들과 센세이션, 고백에 사로잡힌다.

언론에서 가장 많이 보게되는 기사가 무엇이더라? 특히 대통령이 누군가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꼭 벌어지는 사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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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말 걸기 - 명로진 쓰고, 정아 그리다
명로진 지음, 정아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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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말걸기 / 명로진 쓰고, 정아 그리다. / 랜덤하우스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지금 애인과 함께 있다면 절대 이 책을 들출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랑,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적인 사랑, 이별이라는 단계를 넘어서서 차디차게 식어버린 사랑, 그리고...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불붙어 타오르는 다시 시작하는 사랑까지...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사랑의 모습을 원고에 담기에는 저자 자신의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에필로그에 모두 스물여섯 명의,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빌려준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고맙다고 썼다

스물여섯 명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그 모든 사랑이 전부 다른 이야기이다. 시작도 다르고, 끝도 다르다.
첫눈에 타오르는 사랑부터 시작하면서 바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 아예 시작조차 못한 사랑까지...

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처음으로 여자라는 대상을 보며 가슴 떨림을 느꼈던 게 언제였더라?
대략 열네댓 살 무렵?
그 후로 나도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다.
밤새 뒤척이며 신열을 앓던 사랑도 있었고, 애끓던 사랑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차갑고 아픈 이별을 했던 기억도 있다.

매번 내 사랑은 이별로 끝이 났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책, 연애에 말 걸기를 읽었고, 그것도 모자라 리뷰라는 이름으로 독후감까지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 내 옆에 내 애인이 없으므로...

사랑은 무엇일까?
사람이라는 동물이 세상에 존재하던 그 날 이후로 이 지구 위 어디에선가는 여전히 사랑이 있어왔고 지금도 이 땅 어디에선가는 사랑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
생물학적, 유전적으로야 쉽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세를 통해 생명의 지속적인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또 다른 방향으로, 즉 감정적으로 설명하자면 온 우주를 꽉 채워도 남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사랑은 이성적으로는 정의할 수 없다.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아니 그 사람들이 겪은 사랑의 수를 모두 합한 것만큼 많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은 모두 다른 모습이며, 내가 살면서 경험한 사랑도 모두 다른 모습이었다.

이 책을 다 읽었다.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문을 열고 나가서 내가 사랑할 사람을 찾아야 할까?
이제 또 다른 모습의 연애를 시작해야 할까?

이 책은 참 나쁘다.
수없이 많은 모습의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시작하라고 소근거린다.
그런데...
정작 내게는 사랑할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참으로 몹쓸 책이다.

사랑할 사람을 찾기 위해 안테나를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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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대한민국 말하기 교과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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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김미경 / 21세기 북스 

내가 처음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것이 91년이던가?
대학 편입을 하겠다고 맘먹고 제일 먼저 직업을 바꾸었다. 그 전에는 컴퓨터그래픽 관련 일을 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야근이나 철야가 당연한 그런 근무환경에서 편입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압구정동에 있는 디자인 학원에서 컴퓨터 그래픽 강사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강의를 하던 날...
예쁘장한 여학생 하나를 앞에 두고 얼굴이 벌개지고 목소리가 떨리고 더듬기까지 했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일 쓰던 프로그램이고 눈을 감아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포토샵인데,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다는 걸 처절하게 느꼈다.

그 여학생을 내 강의 연습 대상으로 삼았다.
큼직한 스프링 노트를 한 권 구입했다. 표지에 <강의노트>라고 큼직하게 적은 후, 그 여학생 앞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조리 적었다. 말을 더듬거나 헤맨 부분은 형광 펜으로 표시를 했고, 별 생각없이 툭 던진 농담까지 다 기록을 했다. 그 여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질문을 한 내용은 빨간 펜으로 표시를 했고, 내 답변은 녹색 펜으로 적었다.

그 여학생은 6개월 정규과정을 수강했었는데 매일 두 세 시간씩 6개월을 만나다보니 서로 제법 친해졌었나 보다. 나중엔 수업 중에 내 노트를 들고 자기가 질문한 부분을 제대로 적었는지 확인하고 잘못 적은 부분은 직접 수정을 해주기도 했다.

6개월의 과정이 끝난 후, 수료증을 들고 찾아온 그 여학생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선생님한테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여학생과 식사를 하며 난 그녀에게 작은 선물 상자를 건넸다.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강의 실력 많이 늘었어요.”
정말 고마웠다. 그녀가 내게 배운 6개월이 사실은 내가 강의에 대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공부한 기간이었다.

요즘은 제법 강의 경력이 쌓인 덕에 조금 덜하지만, 새로운 강의를 시작하게 되면 꽤 꼼꼼하게 준비를 한다.
관련 자료를 뒤지고, 커리큘럼을 만들고, 세부항목을 정리한다. 그리고 강의할 내용을 구어체로 작성한다. 작성된 원고를 들고 시간을 확인하며 크게 읽어본다. 강의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치 툭 던진 것 같은 농담마저도 모두 사전에 준비한 내용이다.
그렇게 해서 강의시간에 맞게 원고를 만들고 나면 녹음을 하면서 다시 읽는다.
지금은 딸아이가 커서 싫다고 내빼버리지만,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는 내 강의를 처음으로 들어주는 수강생 역할을 했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준비를 해도 막상 강의 현장에서는 항상 내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준비한 내용을 다 전하지 못하거나 혹은 시간이 남는 상황도 발생한다.
필요할 것 같으면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명함을 새로 만들어서 갖고 가기도 한다.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강의를 풀어가기도 한다.
내가 강의한 내용은 가능한 한 녹음을 한다.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녹음한 내용을 들어보며 잘못된 부분을 확인한다.

이 책, 아트스피치를 읽으며 참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했다.
그리고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부분들은 왜 그런 반응을 불러왔으며, 썰렁했던 부분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경험상 막연하게 ‘이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던 부분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좋았는지 알게 되었다.

책장이 참 빨리 넘어갔다.
워낙 쉽게 풀어쓰기도 했고, 내가 강의를 하면서 경험했던 부분들, 이유는 모르지만 써먹던 수법들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대학 시절에 전공했던 음악의 다양한 기법과 효과를 스피치에 접목하고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그렇게 스피치를 하라고 말한다.
원고는 악보이고 스피치는 지휘자이며 청자는 악단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표현이 참 신선했다. 흔히 청자를 관객에 비유하는데, 저자는 청자마저도 악단의 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느끼는 것...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상황, 심지어 짧은 건배사마저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경험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이다.

많은 수의 사람을 앞에 두고 정해진 시간동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강좌를 시작하는 첫 만남, 그 순간은 설렘을 느낀다.
그 설렘을 뚜렷한 목표를 향한 시작이라고 한다면, 그 첫 만남을 위해 보다 열심히 꼼꼼하게 강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그런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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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1
토니 마이어스 지음, 박정수 옮김 / 앨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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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빨간 만년필을 옆에 놓아둔다. 내용 중에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거나, 가끔 오탈자를 발견하는 상황이 되면 밑줄을 죽죽 긋거나 표시를 한다. 빈 여백에 간단한 메모를 하기도 한다.

몇 달 전, ‘로쟈의 인문학 서재’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먼저 이 빨간 만년필을 사용하게 만든 내용은 [책 머리에]라는 제목의 앞부분이었다.
8 페이지 중간쯤에 “...... 철학에 대한 진지한 잡담과 지젝 읽기, 그리고...”라는 부분이었다. 지금 들춰보니 “지젝 읽기”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 옆에 “오타?”라고 적어두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마도 ‘지적 읽기’, 즉 지적인 책읽기의 오타일거라고 예상을 했었더 것으로 기억한다. 글고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그것이 ‘지적 읽기’가 아니라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혼자 보고 있음에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잉크로 쓴 것만 아니라면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싶은 심정...

그래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라는 책을 읽고 쓴 서평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었다.
‘도대체 지젝이 뭐하는 사람이야?’

지인 한 분이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를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얼마 전, 책을 몇 권 주문하러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필요한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 후, 찜 목록을 훑어보다가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내가 미워한다!’라는 생각을 하며 함께 주문을 했다.


이 책은 토니 마이어스라는 사람이 지젝이라는 인물과 그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사상에 대해 풀어쓴 책이다.


이런 류의 책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덕분인지 한 번 읽고 나도 도통 책의 내용이 정리되지 않았다. 앞서도 적었듯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버릇을 갖고 있는 나는 이 책에서도 몇 군데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내가 밑줄을 그은 부분은 주로 이해가 잘 안되거나 평소 막연하게 의문을 갖고 있던 부분에 대한 내용이었다.

리뷰를 쓸 생각으로 책을 다시 펼쳤다. 밑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빠르게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뭐랄까...
이 사람, 지젝이라는 양반의 머릿속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고민을 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밑줄 그은 부분을 모두 타이핑하고 보니 한글 문서로 열 장이 넘었다.
별로 분량이 많지도 않은 책인데 이 정도라니, 내가 사상, 철학 분야에 문외한인 게 사실이라는 것만 확인한 기분이다.


이 책은 지젝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상당히 많은 주제를 언급한다.
정치학, 정신분석학, 이데올로기, 주체, 포스트모던, 성, 페미니즘, 인종주의까지...


사실 아직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내가 어떤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정리가 잘 안 된다.

다만 내용 중에서 기억나는 몇 가지 공감가는 부분은 있다.
옮긴이의 글 부분에서 점쟁이, 무당으로 대변하는 선택에 따른 책임감, 그것을 대신하는 데에 따르는 당사자의 책임회피성에 대한 부분에서 우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도 기억에 남고, 신에 대한 언급, 인종주의, 특히 과격할 정도로 행동하는 집단에 대한 분석도 기억에 남는다.


요즘 내가 주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해서이다. 남들은 사춘기때에나 한다는 그런 고민을 마흔을 넘겨 중반에 이르러서야 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죽는데, 무엇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그 모든 것들의 마지막은 결국 죽음인데 그런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열정을 갖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왜 그런 사람들에게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존경을 표하는가?


이 책,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는 나의 이런 고민에 해답을 마련해주지는 못했다.
글쎄... 조금은 힌트를 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좀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고...


이번에는 아예 지젝이 직접 쓴 책을 몇 권 읽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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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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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두 달쯤 전에 트위터에서 #북트윗_ 해시태그 이벤트를 통해 받았다. 트위터를 사용한지는 조금 되었지만 이벤트에 참여한 건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알게 된 건 지난여름, MB가 휴가 길에 이 책을 가져갔다는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궁금해서 한 권 구입하려던 참이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맘에 드는 구절에는 붉은 만년필로 줄을 긋거나 박스를 치거나 별표를 하는 등 어쨌든 좀 지저분하게 책을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어떻게 했을까?
줄줄이 줄줄이 밑줄을 긋고 연신 표시를 해가며 읽었다.
뭐랄까? 평소 살면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상에서의 선택이나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단지 한 꺼풀 벗겼을 뿐인데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고민하게 만든 구절은 이 부분이다.


중세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전통이나 물건 본래의 가치로 결정되는 ‘공정 가격’에 따라 물물교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지켜본 결과, 시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었을 뿐 ‘공정 가격’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14P)


이 책의 첫머리에는 이런 비유가 나온다.
천재지변으로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 그들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폭리를 취하며 생필품을 팔아먹는 장사꾼들이 있다. 생수는 평소 가격의 몇 십 배로 치솟고, 심지어 잠자리가 없어 고생하는 이들에게 몇 배의 금액을 요구하는 숙박업소 주인들이 있다.
과연 이들을 나쁘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이 부분에서 저자는 몇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우선, 그렇게 비싼 금액을 지불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위험지역이 되어버린 곳에서 일상적인 대가를 지불할 경우, 위험지역에서 어떤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과연 물품, 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달려갈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불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위에서 인용한 ‘공정 가격’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한 부분이다. 공정한 가격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나 역시 같은 문제로 고민을 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컴퓨터 그래픽을 처음 시작했던 것이 1990년 중순경이었다. 당시에는 수요나 공급이 턱없이 작은 시장이었고 공정한 가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포토샵으로 인물사진 리터칭 몇 번 해주고 몇 십, 몇 백만 원을 받기도 했고 몇 날을 밤을 새워 일을 하고도 일한 기간 동안의 밥값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다시 말하자면 일의 난이도나 일에 투입된 시간과 그로 인해 손에 쥐게 되는 돈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공정한 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런 일 따위는 없었을 테지.
더구나 같은 일을 20년이라는 시간동안 하고 있는데 당연히 처음 시작했던 그 시절보다 돈을 더 벌어야 정상이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는 걸 살면서 체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이토록 정의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에서 저자는 정의를 이야기한다.

마이클 조던(우리나라에서라면 중소기업을 넘는 수준의 수입을 올리는 유명인들이 이에 해당하겠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과연 정당한가?
대학에서 돈을 받고 입학허가를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징병제와 모병제는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대리출산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국가 차원에서 과거에 행한 잘못을 지금 사죄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심지어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소유권을 일부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국가가 세금을 징수하는 대신 그 금액에 해당하는 노동을 원한다고 할 때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다면 결국 내 신체에 대해 일정 수준의 소유권을 국가가 갖는다는 논리도 성립되는가?


이 모든 상황에서, 아니 우리가 매일 숨 쉬고 살면서 만나는 온갖 일상에서 정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저자는 과연 정의가 이 땅에 제대로 뿌리내리고 지켜지는지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저자는 이것을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제레미 반담의 공리주의, 이마누엘 칸트의 권리옹호, 존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철학자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고민을 통해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부분들을 몇 가지 언급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먼저 군 문제, 징병제든 모병제든 결국은 국민들이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낸 돈으로 용병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부자가 돈으로 대리입영자를 사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일까?
대학에서 경매 등의 방법으로 입학허가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입학기준을 학습능력에서 경제능력으로 바꾼 것뿐인데...
정보가 제한된 상태에서 계약이 이루어진다면, 계약 당사자가 자신의 의지로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공정하고 자유의지에 따른 계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중요한 정보를 슬쩍 감추고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면 설령 자유의지에 따른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 센델이라는 대학교수가 평생 동안 강단에서 정의를 논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의 강의와 토론, 연구가 없었다면 절대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2010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과연 정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그 전에..., 내 안의 정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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