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대한민국 말하기 교과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김미경 / 21세기 북스 

내가 처음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것이 91년이던가?
대학 편입을 하겠다고 맘먹고 제일 먼저 직업을 바꾸었다. 그 전에는 컴퓨터그래픽 관련 일을 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야근이나 철야가 당연한 그런 근무환경에서 편입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압구정동에 있는 디자인 학원에서 컴퓨터 그래픽 강사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강의를 하던 날...
예쁘장한 여학생 하나를 앞에 두고 얼굴이 벌개지고 목소리가 떨리고 더듬기까지 했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일 쓰던 프로그램이고 눈을 감아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포토샵인데,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다는 걸 처절하게 느꼈다.

그 여학생을 내 강의 연습 대상으로 삼았다.
큼직한 스프링 노트를 한 권 구입했다. 표지에 <강의노트>라고 큼직하게 적은 후, 그 여학생 앞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조리 적었다. 말을 더듬거나 헤맨 부분은 형광 펜으로 표시를 했고, 별 생각없이 툭 던진 농담까지 다 기록을 했다. 그 여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질문을 한 내용은 빨간 펜으로 표시를 했고, 내 답변은 녹색 펜으로 적었다.

그 여학생은 6개월 정규과정을 수강했었는데 매일 두 세 시간씩 6개월을 만나다보니 서로 제법 친해졌었나 보다. 나중엔 수업 중에 내 노트를 들고 자기가 질문한 부분을 제대로 적었는지 확인하고 잘못 적은 부분은 직접 수정을 해주기도 했다.

6개월의 과정이 끝난 후, 수료증을 들고 찾아온 그 여학생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선생님한테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여학생과 식사를 하며 난 그녀에게 작은 선물 상자를 건넸다.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강의 실력 많이 늘었어요.”
정말 고마웠다. 그녀가 내게 배운 6개월이 사실은 내가 강의에 대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공부한 기간이었다.

요즘은 제법 강의 경력이 쌓인 덕에 조금 덜하지만, 새로운 강의를 시작하게 되면 꽤 꼼꼼하게 준비를 한다.
관련 자료를 뒤지고, 커리큘럼을 만들고, 세부항목을 정리한다. 그리고 강의할 내용을 구어체로 작성한다. 작성된 원고를 들고 시간을 확인하며 크게 읽어본다. 강의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치 툭 던진 것 같은 농담마저도 모두 사전에 준비한 내용이다.
그렇게 해서 강의시간에 맞게 원고를 만들고 나면 녹음을 하면서 다시 읽는다.
지금은 딸아이가 커서 싫다고 내빼버리지만,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는 내 강의를 처음으로 들어주는 수강생 역할을 했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준비를 해도 막상 강의 현장에서는 항상 내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준비한 내용을 다 전하지 못하거나 혹은 시간이 남는 상황도 발생한다.
필요할 것 같으면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명함을 새로 만들어서 갖고 가기도 한다.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강의를 풀어가기도 한다.
내가 강의한 내용은 가능한 한 녹음을 한다.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녹음한 내용을 들어보며 잘못된 부분을 확인한다.

이 책, 아트스피치를 읽으며 참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했다.
그리고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부분들은 왜 그런 반응을 불러왔으며, 썰렁했던 부분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경험상 막연하게 ‘이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던 부분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좋았는지 알게 되었다.

책장이 참 빨리 넘어갔다.
워낙 쉽게 풀어쓰기도 했고, 내가 강의를 하면서 경험했던 부분들, 이유는 모르지만 써먹던 수법들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대학 시절에 전공했던 음악의 다양한 기법과 효과를 스피치에 접목하고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그렇게 스피치를 하라고 말한다.
원고는 악보이고 스피치는 지휘자이며 청자는 악단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표현이 참 신선했다. 흔히 청자를 관객에 비유하는데, 저자는 청자마저도 악단의 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느끼는 것...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상황, 심지어 짧은 건배사마저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경험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이다.

많은 수의 사람을 앞에 두고 정해진 시간동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강좌를 시작하는 첫 만남, 그 순간은 설렘을 느낀다.
그 설렘을 뚜렷한 목표를 향한 시작이라고 한다면, 그 첫 만남을 위해 보다 열심히 꼼꼼하게 강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그런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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